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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04. 2022

꿈 얘기를 글로 쓰는 의식의 흐름

매일 발행 32일차

다른 사람의 꿈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란 정말 가지각색이구나, 감탄하곤 한다. 어제 제이가 올린 ‘전광판 광고에 내가 나온다면’은 꿈 얘기를 고쳐서 쓴 글이었다. 원고지 5매도 안 되는 글을 발행하기 위해서 제이가 어떤 방황과 혼돈과 타협의 시간을 보냈는지 정리해 보았다. 참고로 제이는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타이핑하면서 글을 써나가는 습관이 있다.


1. 이상한 꿈을 꾸고 기록함

간밤에 진짜 스펙터클한 꿈을 꿨다-_- 낡은 리조트 같은 데로 워크숍 같은 걸 갔는데 리조트 직원들이 아이들 데려온 가족을 보고 ‘뭐 이런 데 애들을 데려와’하고 자기들끼리 뒷말을 하는 거. 뭐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나려나? 싶은 뉘앙스.

그 숙소 뒤쪽엔 엄청 넓은 황야가 있는데 갑자기 쓰나미 일어나듯 땅이 솟구치며 무너지기 시작. 황야에 있던 사람들은 쓰나미 반대방향으로 막 달려갔고 나도 달려가서 까딱하면 묻힐 뻔하다가 어떤 사람이 이쪽으로 뛰라고 해줘서 그쪽으로 달려가 생존함. 원래 총 인원이 수백 명이었는데 수십 명 정도 남았다 함.

넘어간 쪽에 무슨 버스터미널 같은 게 있었는데 일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음. 옷 단추가 떨어져서 옷핀을 찾으려고 터미널 안 사무실 같은 데서 책상들을 뒤져봄. 다른 사람들도 단서를 찾거나 뭔가를 훔치려고 사무실을 뒤짐. 여기서 약간 방탈출게임 느낌? 옷핀 찾아서 꽂고 밖에 나감.

나가보니 또 공터 같은 게 있고 그 너머에 약간 VR 분위기의 대도시가 보임. 얼핏 보면 광화문~종각 쪽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면 아닌. 아니 저기 저런 도시가 있네? 하고 놀라는데 갑자기 허공에 거대한 무한도전 로고가 뜨는 거. 알고 보니 여기는 거대한 전광판 화면 안이어서 우리 모습을 대도시 사람들이 시청하는 거였음. 이럴 수가! 하는 데서 깸.


2. 오늘의 글감으로 채택

이거 좀 다듬으면 이야기 한 편 되겠는데?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블록버스터 버전 ㅋㅋ 그러고 보니 인물의 ‘위치’를 옮김으로써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도 있겠구나. 난 주로 카페나 거리에서 광화문 전광판을 올려다보는 위치였는데, 그 전광판 속의 누군가가 되어 도시를 내다본다면...


3. 주요 장면을 추려봄

저 꿈 얘기를 좀 말이 되는 줄거리로 정리해보면 어떻게 될까? 일단 중요한 장면을 꼽아보자면: 시작은 낡은 리조트에 간 것 > 리조트 직원들이 위험을 암시 > 땅이 솟구치며 무너져 많은 사람이 묻히고 나는 살아남음 > 생존자들이 저 멀리 보이는 VR 느낌의 대도시 발견 > 허공에 무한도전 로고 ㅋㅋㅋㅋㅋ > 내가 전광판 영상의 등장인물이었다는 사실


4. 이후의 전개 구상

여기까지 보면 완전 발단인데...? 이 다음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결말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끝점을 찍어보자.

흠... 처음에 위험을 암시했던 리조트 담당자들을 다시 관여시켜서.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인공 ‘나’는 처음부터 전광판 속 사람이었나 아니면 워크숍을 시작으로 옮겨간 건가? 처음부터였다면 뭔가 『소피의 세계』나 <W> 같은 전개가 되기 쉽겠고, 워크숍을 시작으로 옮겨간 거라면 사실 일반인 예능프로그램이랑 거의 똑같잖아? 일반인들이 어느 날 특정 프로그램에 참가해 방송에 나가는 거랑 똑같지.

근데 희한한 건, 전광판 바깥의 세계도 진짜 현실 같은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VR영상 같은 인공적인 분위기였다는 건데. 흠............ 오히려 지구에 사는 우리가 처음부터 전광판 안에 있고 일종의 외계인?들이 우리 사는 모습을 시청하고 있다거나.


5. 회의에 빠짐

아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거 아냐?-_- 지금 당장 써서 올리기에는 너무 일이 커지고 있는데... 그리고 쓰다보니까 얘깃거리가 안 되는 거 같다. 너무 흔하고 단순하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은데-_-........... 그렇지만 진짜 의미없고 재미없을지는 써봐야 아는 거 아냐? 일단 어떤 결말이 가능할지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해보는 게 어때.


6. 여러 결말을 구상해봄

- 프로그램 속에서 게임이나 미션을 해서 이기거나 진다.

- 리조트 직원들이 다시 나타났는데 나밖에 못 알아본다.

- 전광판에서 탈출해 VR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또는 전광판 속의 현실세계에서 나와 VR세계에 스스로 갇힌다. 근데 전광판 속의 세계도 주인공에게는 낯선 꿈속 같은 세계고, 전광판 밖의 세계도 역시 낯선 세계인 거잖아? 주인공이 떠나온 ‘현실’은 전광판 안도 바깥도 아닌 제3의 세계인 거잖아?


7. 발등에 불이 떨어짐

하........ 큰일났다 기어이 자정을 넘겨버렸다 으악! 자꾸 그냥 다른 소재로 돌릴까 싶지만 딴길로 새지 말고 지금 이 주제를 끝맺는 연습을 해보자. 하... 낼 아침에 일어나기 겁나힘들겠네 아오 인생 개피곤하네-_-


8. 또 다른 결말을 구상해봄

- 꿈에서 깬다.

- 지금까지의 전개가 전광판 광고였다. 하늘에 뜬 메시지는 무한도전 로고가 아닌 상품 광고였다. 아니면 영화 예고편? 게임 광고? 재난으로부터 아이들을 구출하는 게임이라면... (인터넷 검색해보니 실제로 비슷한 게임이 있음ㅋ) 흠... 아무래도 아이들이 재난 위험에 빠지는 얘기는 너무 심각해질 것 같은데.

아무튼 광고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대로 다 암흑에 묻혀 죽든가, 현실로 돌아가든가 둘 중 하나다. 몇 번 사이클을 돈 뒤 나는 리조트 담당자들에게 묻는다. 광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요? 현실로 돌아가나요? 아니면 다 같이 죽나요?


9. 일단 첫부분을 써보기 시작함

제이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리조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시설은 낡고 오래되었으며 욕실과 화장실도 공용이었다. 마치 중학생 때 극기훈련을 갔던 수련원 같은 분위기였다.

슬슬 주변이나 구경해볼까 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숙소로 향하는 사람, 똑같은 썬캡을 맞춰 쓴 4인가족, 출장을 나온 듯 일 얘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직장인들, 유니폼 차림의 리조트 직원들이 보였다.

도무지 관광지 분위기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리조트 뒤에는 드넓은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도, 꽃밭도, 논도 아닌 그야말로 흙과 자갈뿐인 허허벌판이었다.

그때였다. 굉음과 함께 해일처럼 땅이 솟구쳐 올랐다. 비명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이도 미친듯이 달렸으나 흙벼락은 모두를 집어삼킬 기세로 등뒤를 쫓아왔다.


10. 어려운 설정 다 버리고 타협함

쓰고 보니 리조트 부분이랑 전광판 부분이 잘 안 붙네-_- 광고라면 대체로 저런 허접한 리조트나 지진 장면은 안 나올 거 아냐-_- 으악 1시인데 큰일났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그냥 진짜 간단하게 쓰자... 리조트를 특급호텔로 바꿔버리고 지진 요소, 아이들 요소 다 빼고 전광판 광고 아이디어만 살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오 피곤해 죽겄네-_-..........


11. 새벽 2시 발행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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