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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07. 2022

더는 미룰 수 없는 묘사 연습

매일 발행 35일차

제이는 묘사가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작법서에서 '시놉시스 같은 글'이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뜨끔하곤 한다. 인물과 배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요약한 줄거리처럼 서술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11일차에 쓴 '뿔이 집 모양으로 자라는 공룡'의 앞부분은 이렇다.


그 행성에는 거대한 뿔이 집 모양으로 자라는 공룡이 있다. 뿔 속에는 방도 있고 문도 있고 화장실까지 있다. 그 행성의 외계인들은 모두 뿔 속에서 거주하며, ‘뿔’이라는 단어는 곧 ‘집’을 뜻한다. 어린 공룡의 작은 뿔이 자라서 어엿한 원룸 크기가 되면, 그때 마침 성년이 된 외계인이 가족과 함께 살던 큰 뿔을 떠나서 작은 뿔로 이사한다.


이런 게 바로 시놉시스 같은, 설정집 같은, 관찰 보고서 같은 글의 표본이 아닐까? 초고 단계에서는 이렇게 쓸 수도 있지만, 다시 보면 고칠 부분이 많다. 묘사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물도 없고 사건도 없고 디테일도 없고 제목도 별로다. 차라리 '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걸.


약한 걸 알면 연습을 해서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해야 하는데 제이는 지금 당장 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성급함 때문에, 또는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기가 두려워서, 또는 쓰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 때문에, 또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인내심 부족, 놀고 싶은 마음 등등으로 인오히려 더 긴 세월을 허비해버렸다. 피아노 기본기가 없는 걸 알면서도 하농을 치지 않고 베토벤 소나타부터 작정 시작한 것처럼.


피아노야 취미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글쓰기만큼은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어, 본격적인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딱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샌드라 거스, 『묘사의 힘』, 윌북 (사진 왜이럼... 카메라를 사야 하나)


여러분이 영화관 관람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영화는 나오지 않고 옆에 앉은 어떤 사람이 영화에 나오는 재미있는 부분을 몽땅 말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  여러분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직접 영화를 보면서 그 세계에 푹 빠져 현실 세상을 잠시 잊고 싶은 것이다.(19쪽)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 내용을 말로 듣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생각하며 책에 나오는 제들을 끝까지 풀어볼 작정이다. 이런 연습은 10년 전에 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 갑자기 현타가 밀려온다. 아 이녀석 지금까지 뭐하고 산 거지... 으아악 흑흑 엉엉엉ㅠㅠㅠㅠㅠㅠㅠ




(연습 1)

공룡은 삿갓조개 모양의 거대한 뿔을 머리에 인 채 흙바닥에 턱을 대고 있었다. 뿔 속에서 나온 야가 초록빛 뺨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공룡이 앞발을 들어 뺨을 쓱 닦자, 야는 '끼이익 끼익' 하고 공룡의 언어로 말했다. '우냐?'라는 뜻이었다. 공룡은 '끽, 끼익끽' 하고 대답했다. '웃기고 있네'라는 뜻이었다.

짐수레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엄마가 야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왜, 아주 내일 아침까지 세워놓지 그랬니."

"엄마는 서운하지도 않아?"

"가서 아빠나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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