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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09. 2022

세 단어로 글쓰기_ 주머니, 할머니, 슬그머니

매일 발행 36일차

희주는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기차역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헐떡거리는 숨에 마스크가 부풀었다 달라붙었다 했다. 6번 게이트 아래에 이미 도착한 기차가 보였다. '제발, 제발 출발하지 마라' 되뇌이며 미끄러지듯 계단을 내려가서는 가장 가까운 문으로 뛰쳐들어갔다. 객차 문을 양손으로 미는 순간 기차가 출발했다.


자리를 찾아 주저앉은 희주는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옆자리 할머니가 창 쪽으로 붙어 앉으며 희주가 깔고 앉은 치맛자락을 슬그머니 빼냈다.


"앗, 죄송합니다."


희주는 자세를 바로하고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어 요모조모 살폈다. 부러지거나 날아간 꽃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기차를 놓쳤다면 가족들은 밤늦도록 저녁도 못 먹고 석 달 만에 만나는 막내를 기다릴 것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탑승 성공. 죽다 살아남' 잠시 후 1이 사라지고 폭죽이 빵빵 터지는 '축하축하' 이모티콘이 떴다.


"그거 얼마짜리래?"

"네? 저요?"


희주는 동그래진 눈으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옆자리 할머니였다. 머리가 새하얗고 체구가 작았다.


"그 꽃 말여."

"아... 이거요? 만오천원인데요."

"어이구, 비싸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희주가 잠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할머니가 가디건 주머니에서 뭔가를 스윽 꺼냈다. 빨간 색종이를 접어서 만든 카네이션이었다.


"우리 손주가 여섯 살인데, 세상에 벌써 이렇게 카네이션을 만들어 주더라고."

"와아, 진짜요? 아이고 귀여워라."

"늙은이가 주책이지? 집에 가면 나 혼자라 어디 자랑할 데도 없고..."

"아이, 자랑하실 만해요. 너무 기특하시겠어요."


희주는 여섯 살짜리가 만들었다는 색종이 카네이션을 살짝 만져보았다. 어린시절, 학교 미술시간에 친구들과 다 같이 카네이션을 만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 아빠도 그때를 기억하겠지, 생각하며 희주는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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