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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10. 2022

한 시간 안에 써내지 못하면

매일 발행 37일차

제이가 큼직한 모래시계를 쾅 하고 뒤집자, 케이는 어깨를 움찔했다. 파란색 모래가 가늘게 흘러내려 밑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딱 한 시간이야. 내가 한 시간 안에 뭐라도 써내지 못하면..."

"못하면?"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벌칙을 주도록 해."

"너한테 말이지?"

"그래. 아무래도 난 협박을 좀 받아야겠어."

"슬슬 맛이 가는구나. 월요병인가?"

"무슨 벌칙으로 할래? 정신이 번쩍 들게 무시무시한 걸로 생각 좀 해봐봐."

"나 같은 천사가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있겠니."

"음. 청각 고문으로 시작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고 진짜로 생각이 안 난다고. 뭐 간지럼이라도 태워줄까? 아님 딱밤이나 인디언밥? 엉덩이로 이름이라도 쓸래?"

"아니 무슨 일곱 살이야?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순수했다고 그래?"

"너 글쓰게 하려고 내가 전과자가 될 순 없잖아?"

"잔인하지만 범죄는 아닌 짓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네, 친구."

"좋아. 그럼 나는 벌칙을 생각할 테니 너는 글을 써라."


두 사람은 각자 종이를 앞에 두고 열심히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제이는 엉망진창 유치찬란한 글 한 편을 완성했고, 케이도 벌칙 후보 세 가지를 고안해냈다. 제이와 케이는 마약 거래라도 하듯 서로의 작품을 교환했다.


케이가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벌칙들은 이러했다.

1. 날아다니는 대왕바퀴벌레 방 안에 풀어놓기

2. 노래방에서 헤드뱅잉하던 사진 업무용 단톡방에 올리기

3. 회사 부장님에게 영상통화 걸기


"와우... 생각보다 제법인데? 이 정도면 꽤 정신이 들겠어."

"어떠냐. 내일은 바퀴벌레 두어 마리 몰고 와볼까?"

"...그냥 쓸게. 쓸 수 있을 거 같아."


내일 제이는 과연 제시간에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필요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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