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42일차
나는 퀴퀴한 상자를 덮어쓴 채 밤새도록 찌그러져 있다. 잠이 깰 무렵이면 상자 틈새로 가느다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직원들의 발소리며, 뭔가를 내려놓는 소리, 빗자루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툭, 상자가 흔들린다. 누가 부딪쳤는지, 아니면 일부러 발로 찼는지.
"야, 너 풍선인형한테 맞아본 적 있냐? 나 어제 맞았다."
"니가 가까이 가니까 맞지. 바보냐?"
이런 대화를 들으며 나는 여전히 찌그러져 있다. 내가 어제 저 직원에게 부딪쳤던가? 모르겠다. 춤을 추다보면 엎어졌다 솟구쳤다 온몸을 휘두르느라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니까. 내가 미안해해야 하나? 모르겠다.
직원들이 출근하고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상자가 벗겨지고 환한 바깥으로 끌려나간다. 모터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들어오자 금세 몸이 일으켜진다. 이때가 바로 내가 거리의 풍경을 제대로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6차선 대로 너머에 처음 보는 풍선인형을 발견함과 동시에 머리가 푹 꺾이며 끝없는 헤드뱅잉이 시작된다. 얼굴에 활짝 웃는 눈이 그려져 있으므로, 나는 꽤 즐거워 보일 것이다.
골이 울리는 중에도 내 신경은 온통 길 건너 풍선인형에게 가 있다. 얼핏얼핏 보이는 모습을 종합해보니 북 치는 병정 모양이다. 가만히 서서 양팔로 북만 치고 있다. 와, 부럽다. 훨씬 편하겠는걸? 나는 왜 풍선인형 중에서도 이렇게 구식으로 태어났을까. 구식인 만큼 나는 이 설렁탕집에서 일한 지도 꽤 오래됐다. 밤에는 아싸 중의 아싸가 되고, 낮에는 인싸 중의 인싸가 되는 생활을 한참이나 해왔다.
저 신입 풍선인형도 지금 아마 나를 보고 있겠지. 풍선인형으로 산다는 게 어떤지, 하루종일 북만 치는 건 춤만 추는 것보다 좀 나은지, 북을 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만나면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차가 쌩쌩 달리는 6차선 대로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아무 대화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