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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16. 2022

500년쯤 살지 못한다면

매일 발행 43일차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500년쯤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게으르게 깔짝깔짝 느릿느릿 하면서도 하고픈 일을 다 하려면 오래 사는 수밖에 없다. 500살까지 살다보면 그중 언젠가는 엄청난 소설을 써내거나 몇 가지 학문을 박사 수준으로 파고들거나 5개국어를 마스터하거나 화가, 가수, 피아니스트, 무용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것도 ‘사고 싶은 게 너무 많다’와 똑같이, 외부로부터 부추겨진 과도한 욕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 싶은 책, 써보고 싶은 글감, 배우고 싶은 분야, 해보고 싶은 취미, 들이고 싶은 습관 등등 수많은 '하고 싶은 것들'이 진짜 나다운 삶을 위한 것인지, 광고를 보고 충동구매하듯 가볍게 자극된 마음인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하면 열정적이고 인생 재밌게 사는 사람 같아서 좋아 보이지만, 짧은 인생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법. 하고픈 걸 다 하려다보면 여유를 잃고 과로하거나, 더 중요한 뭔가를 놓치거나, 하고픈 걸 다 못했다는 데에 지나친 억울함이나 자책감을 갖게 되진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고 후회 없는 삶이 될까?


하고 싶은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그중에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조바심 없이 즐기면 된다. 사고 싶었지만 못 산 물건들이 있듯, 살다보면 스쳐지나가버리는 인연들도 있듯, 반짝 하고 사라지는 의욕들도 있는 게 당연하다. 이룰 수 없었던 자잘한 버킷리스트를 미련없이 보내줄 줄도 알아야겠다. 한정된 월급을 우선순위에 따라 사용하는 것처럼, 한정된 수명을 사용하는 데도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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