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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23. 2022

'세월아 네월아' 극복을 위한 20분 쓰기

매일 발행 50일차

지금 내 방에서는 갖가지 백색소음이 화음을 이루고 있다. 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틀어놓은 싸이 대표곡 플레이리스트, 고장난 형광등 안정기에서 나는 '지잉-' 소리, 데스크탑 본체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에어컨 바람 소리까지. 형광등 소음은 처음엔 몹시 거슬렸으나, 고치기 귀찮아서 냅두고 살다보니 그냥저냥 적응이 되고 있다. 불이 안 켜지게 되면 그때는 고치겠지.


이런 조용한 듯 시끄러운 방에서 50일 동안 매일 밤 글을 썼다.


별 대단한 글을 쓴 것도 아닌데 매일 쓰기라는 미션은 만만치 않았다. '삼성헬스' 앱의 수면시간 통계를 봤을 때, 지난 한 달간의 평균 취침 시각은 오전 1시 53분. 매일 쓰기를 시작하기 전인 3월의 평균 취침 시각이 12시 12분인 걸 보면 잠이 부족해진 건 확실하다. '하루에 6시간씩 충분히 자면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대단한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8시간을 자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잠보인데 말이다.


그 고생을 50일이나 하고 나서야,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꼭 글이 좋아지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0일 쓰기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찾아보니, '이 주제에 대해 10분간 써봐라'거나, '하루에 30분만 시간을 내서 매일 써라'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나는 10분 30분은커녕 앉은 지 두 시간이 지나도 오늘의 글감을 결정하지 못해 괴로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30분 동안 글 한 편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하루가 가뿐하고 쾌적해질까?


대체 나는 왜 그렇게 글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더 이상 글쓰기가 재밌지 않아서?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는 거라서? 이제는 정말 글감이 똑 떨어져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지만 다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글쓰기가 좋고, 글이 잘 풀려 혼자 실실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는 순간을 사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무궁무진한 글감이 바닷속 바다생물들처럼 잠겨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느린 원인은 역시, 지난 평생 동안 굳어진 미루기 습관 때문이 아닐까? 결정을 미루는 습관, '난 원래 느긋한 성격이야'라면서 세월아 네월아 뭉개는 습관, '마감초능력이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며며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는 습관.


그래서 앞으로는 타이머를 활용해 20분 단위로 작업을 해볼까 한다. 20분 동안 무조건 글감을 결정하고, 그 다음 20분 동안은 정해진 글감에 대해서 아무 소리나 의식의 흐름대로 두드려보는 거다. 그렇게 해서 방향만 잡히면, 고치고 다듬는 건 비교적 집중이 잘 되니까 알아서 하는 걸로.


50일 만에 이제야 루틴을 만들고 있다-_-... 이런 고생과 시행착오와 온갖 시도를 거쳐, 언젠가는 기분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글을 써낼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Free Timer 띄워놓고 작업하기. 딱 필요한 기능만 있는 가벼운 앱이다




p.s. 어제 목표했던 '쓰레기 75리터, 책 50권'은 그럭저럭 달성했다. '그럭저럭'인 이유는, 75리터 봉투를 채우긴 했으나 꼭대기까지 꽉 찬 건 아니고, 버릴 책 50권을 추려냈으나 20여 권은 단행본이 아닌 잡지이기 때문. 상태 괜찮은 책들은 낑낑대며 중고서점에 가져가 팔았는데 34,000원쯤 받았다. 치킨값은 벌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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