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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27. 2022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발행 54일차

예전에는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웠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영원히 기회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한 번뿐인 인생을 끝내게 될까봐. 그러니 최대한 즐겁게 열심히 살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반드시 꿈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서 내가 뭘 후회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몇 년 몇 월 며칠이 될지 몰라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매우 달라졌을 거고,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경험들을 했을 텐데, 그때의 내가 후회할 것을 걱정해서 오늘의 내 삶을 계획하는 게 과연 맞을까?


죽으면서 후회하는 기분이 아주아주아주 나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충치 뽑듯이 그 한순간만 참으면 되는 일 아닐까? 아니, 그럴 것도 없이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졸음이 마구마구 쏟아져서 후회고 자시고 할 정신도 없게 되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죽을 때의 나를 미리 걱정해줄 필요 없이 그냥 적당히 대충 살아도 되지 않을까?


전에 <집사부일체> 정재승 박사 편에서, '햄릿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후회를 과도하게 싫어하지 않는지 되돌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후회란 인간만의 고등 사고능력으로, 후회를 통해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니 후회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특별히 '후회'를 두려워했던 이유가 뭘까? 죽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에는 슬픔, 아픔, 걱정, 허무, 그리움, 편안함, 뿌듯함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후회'만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던 걸까?


후회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 나만 잘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혹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싫어하게 될까봐 미리 눈치를 봤던 건 아닐까?


나는 한 사람이면서 여러 사람이기도 하다.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넌 잘못 살았어, 너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롭잖아, 이 멍청하고 게으른 자식아'라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거 아닐까? 후회와 반성은 필요하되 후회가 비난이 되지 않도록, 여러 '나'들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도록 잘 다독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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