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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30. 2022

너무 늦게 깨달은 것들

매일 발행 58일차

10년쯤 전, 직장을 때려치우고 2년 가까이 습작을 빙자한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보증금 100만원짜리 쪽방으로 이사하고, 남은 보증금, 퇴직금, 그동안 모은 적금을 까먹으며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핑핑 놀았다. 빈곤했지만 자유롭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성과가 없었을 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이봐, 네 인생에서 얼마 안 될 이 황금 같은 시기를 그냥 날려선 안 돼! 2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실속 있게 차근차근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해. 돈 떨어지기 전에 전환점을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며 만년 지망생으로 살게 된다고!!!!!!!!!! 정신차려 이친구야!!!!!!!!!!!!!!!!!!(물론 그런 방황 속에서도 얻는 건 있다만)


그렇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다는 사실, 후회를 해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나는 마음껏 후회하고 있다. 아아 그때의 나는 어쩌면 그렇게 근거 없는 희망에만 가득 차 있었을까.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았을 텐데.


1. 블로그 개설

글쓰기뿐만 아니라 내 문제의 팔할은 용기 부족에서 기인했다. 끝내주는 작품으로 당당하게 데뷔하기 전까지는 내 글을 공개할 용기가 없었기에 2년 내내 나 혼자 보는 비밀글만 써댔다. 당시에는 브런치가 없었으니 아무 블로그라도 개설해서, 완성된 글을 공개하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독립출판도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지.


2. 기본기 연습

자유롭게 꿈을 펼치면 저절로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소설 쓰기도 엄연히 미술 데생 같은 기본기 훈련이 필요했고, 기본기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었다. 어휘, 문법, 묘사, 시점, 대화, 구성 등을 꾸준히 연습했어야 했다. 첫 작품을 술술 써서 데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었다.


3. 관찰과 경험

마냥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을 더 많이 경험했어야 했다. 직장이 없으니 하다못해 취미 원데이클래스라도 나가보든가 주말알바를 하든가 뭐라도 해서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 일기에 내 생각뿐만이 아니라 관찰·경험·대화한 내용을 짧게라도 기록하고, 책을 읽었으면 욕심부리지 말고 단 두 줄이라도 감상을 남겼어야 했다.


4. 신인상 포기

신인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할 생각은 깨끗이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았어야 했다.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과 남의 심사결과에 인생을 거는 건 위험하고 허황되고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과거시험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굴레였다.




이미 지난 일을 어쩌겠는가. 그때의 나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돌고돌아 간 적이 어디 한두번이었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하지 않으면 1년 후 10년 후에 또 후회하겠지. 『아티스트 웨이』의 이 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아티스트로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를 잘 치게 될 때쯤에는(또는 연기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멋진 소설을 쓸 때쯤에는) 제가 몇 살이 되는지 아세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나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이제 시작해보자.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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