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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n 05. 2022

'난 이제 끝인가?'라는 불안에 대해, 영화 <오마주>

매일 발행 64일차

세 번째 영화도 흥행에 실패한 중년의 여성감독 지완.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고쳐보지만 '되'와 '돼'조차 새삼 헷갈리고, 건강을 위해 수영을 시작해봤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아들은 "엄마 영화 내가 봐도 재미없더라. 재밌는 것 좀 만들어봐" 하고, 남편은 돈이나 더 벌어오라고 한다. 이번 영화가 마지막이었을까? 나는 이제 끝인가? 불안하고 심란하다.


<오마주> 스틸컷


그런 지완에게 아르바이트 일거리가 들어온다. 1960년대 여성감독 홍재원(실존인물 홍은원 감독이 모티브)의 <여판사> 필름이 발견되었는데, 후반부 음성이 유실되어 더빙을 입혀야 한다는 것. 대본도 없이 대사를 복원해야 하는 작업이다. 지완은 영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단서를 찾아 나선다. 세 번째 영화가 마지막이었다는 홍 감독이 못다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다. <범죄도시 2>도 볼 생각이었으나 상영기간이 더 짧을 것 같은 <오마주>를 먼저 보았다. 상영관도 작고 시간대도 애매하긴 했지만, 관객이 나 하나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하나.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는 이정은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마냥 잔잔할 것 같은 독립영화지만 은근히 유머도 있고 볼거리도 많다. '1962-2022 시네마 시간여행'이라는 카피처럼, 영화인들의 아지트였던 옛날 다방, 백발 할머니가 된 편집기사, 철거를 앞둔 단관극장 등을 마주칠 때마다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오마주> 스틸컷


1960년대 남성 일색의 영화판에서 홀로 여성감독으로 활동한다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오마주>라는 영화 제목처럼, 신수원 감독은 홍은원 감독이 그 시대의 '홍일점 감독'으로서 어떤 고충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냈는지, 그 열정과 괴로움과 쓸쓸함, 빛났던 순간들을 정성스레 담아 경의를 표한다.


극중의 여러 인물들도 이야기의 공감대를 넓힌다. 지완과 홍 감독뿐만 아니라 옆집 여자, 친구 PD, 편집기사 등의 서사가 합주곡의 다양한 악기들처럼 서로에게 시너지를 발휘하며 진행된다. 그리하여 창작자라면, 영화를 좋아한다면, 꿈 때문에 방황한 적이 있다면, 여성이라면, 중년이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아파트 거주자라면(?), 이중에서 뭐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오마주> 스틸컷


마지막으로, 영화 끝부분에서 아들과 지완이 나레이션하는 시의 울림이 엄청났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내가 잠든 사이에’. 지완이 걸어온 여정뿐만 아니라 내 지난 방황까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느낌? 영화를 다 보고 들어야 더욱 감동적이기 때문에 인용은 하지 않겠다.




몇 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옛날에 쓴 글이 지금보다 더 나은가 싶어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설마 그때가 내 전성기였을까, 설마 겨우 그 정도가? 그때가 내 끝이었다면?' 하는 생각에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해진다. 그러던 시점이라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와닿았고, 위안도 많이 되었다.


영화 도중,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라는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살아남자. 살아남아야겠다.


<오마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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