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여덟, 로또에 당첨됐다.
그날 나는 유년소설 <봄의 향기> 초고를 쓰다 말고 잉여스럽게 뒹굴거리던 참이었다. 백색소음이랍시고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았는데, 실제로 저녁 6시반까지는 화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그만 그놈의 <무한도전>에 발목을 잡힌 것이었다. 그때까지 하루종일 쓴 거라고는 주인공이 봄소풍 장소에서 한 여자아이와 마주치는 장면뿐이었다. 원고지 매수로는 1.27장.
무도가 끝나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보니 로또 추첨 방송 시간이었다. 처음엔 엉덩이 들기도 귀찮아 미적거렸지만 숫자가 세 개 발표되자 벌떡 일어나 내 로또를 꺼내 왔다. 일치한 숫자 세 개에 동그라미를 치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숫자에도 동그라미가 쳐졌다. 마지막 남은 수는 37.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표된 숫자는…… 37!
집을 뛰쳐나간 나는, 밤새 미친놈처럼 싸돌아다녔다. 추리닝 위에 파카만 입은 차림으로 걷다 뛰다 멍하니 서 있다 또 걷고 또 뛰고를 반복했다. 술집에 들어가 보았으나 모든 사람이 나만 보는 것 같아 도로 나와 버렸다. 머릿속으로 지난날의 온갖 찌질하고 억울한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동이 틀 무렵 어느 패스트푸드점 구석자리에서 모닝세트를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당첨금 수령 방법을 검색했다.
월요일,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다니던 논술학원에 사표를 냈다. 원장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새학기 초장부터 강사가 바뀌면 학원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 역시 유감이었다. 한 1월말쯤, 늦어도 2월초쯤 당첨이 되었더라면 학원으로서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을 텐데. 하지만 로또는 그런 사정까지 봐주지는 않았다. 인생역전이란 이토록 느닷없이 닥쳐올 수도 있는 것이다.
<행운의 순간들>이라는 책을 써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심층인터뷰해보는 거다. 어떤 순간에 당첨 사실을 알았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누구에게 알렸는지, 그 다음 날에는 뭘 했는지, 그 다음 해에는 어떻게 인생이 바뀌어 있었는지 등등.
로또에 당첨되고도 책 쓸 생각을 하고 있다니, 역시 난 글쟁이야. 이렇게 생각하자 뿌듯하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내게는 아직 삶의 중심이 있다. 어떤 사람들처럼 도박에 빠지거나 황당한 사업을 벌여 이 행운을 탕진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행운의 순간들>이 가십 기사처럼 얄팍한 기획인 건 안다. 로또당첨자들을 어떻게 찾아내 인터뷰 허락을 받을지 따위의 구체적인 방안도 없다. 늘 이런 식이니 마흔이 다 되도록 제대로 완성한 작품 하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나 역시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가 될 필요가 없어졌으니, 계속 널널하게 살아도 된다. 얄팍한 기획, 쓰다 만 습작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내도 괜찮다. 욕할 사람도 없고 굶어 죽지도 않는다.
“이 선생, 듣고 있어요? 몸이 안 좋으면 진작 얘길 했어야지. 그럼 나도 배려를 해줬을 거 아니에요.”
배려는 무슨. 구인공고 문안이나 미리 써놓고 있었겠지.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진단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힘들더라도 인수인계는 제대로 해줘요. 수술 날짜가 언제라고요?”
“수술은 이달 말인데 적어도 열흘 안에 입원하라네요.”
“무슨 병이길래 그렇게 촉박해요?”
“……”
“사정은 딱하지만 학원도 요새 안 좋은 거 알죠? 퇴직금 좀 늦어져도 이해해주시고.”
하마터면 나는 퇴직금은 됐다고 말할 뻔했다. 퇴직금 따위 껌값에 불과하겠지만, 이 학원에서 청춘을 보낸 대가는 받아내야 한다. 논술을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들의 수많은 형편없는 글들을 읽어야 했고, 우리나라 초대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현학적인 정치철학 지문을 이해시켜야만 했다. 이렇게 보낸 10년이 내 글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을지, 돌아보면 아찔하다.
원장은 사흘도 안 되어 후임을 구해 왔다. 지인의 친척의 딸이라던가. 명문대 국문과 석사 출신으로, 나보다 아홉 살이나 젊은 인재라고 했다. 스물아홉에 학원 강사가 된 인문학 석사. 아주 흔한 루트다. 그녀 역시 앞으로 나 같은 인생을 살게 되겠지. 심지어 로또에 당첨되는 일도 없이. 나는 연민과 성의를 다해 이런저런 서류와 잡무 처리 방법, 주교재 활용법 등등을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원장과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고 학원을 나서자,
봄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여유있게 봄을 만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일 학교를 가야 했고, 4월 말은 언제나 중간고사 기간이었으며, 학원에 취직한 뒤로는 방학도 없이 밤 늦게 퇴근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긴 여행을 가보자. 벚꽃축제의 고장 진해 같은 데서 꽃 피기 전부터 꽃 진 뒤까지 한 달쯤 있다가 올까. 두어 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가 매일 산책을 하는 건 어떨까. 날마다 아주 조금씩 꽃빛이 짙어지고,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고, 저 꽃도 지면 잎이 푸르러지고, 그렇게 천천히 달라지는 풍경을 느끼며 한 달쯤 한가하게 거니는 일. 그러다 내키면 아무데나 걸터앉아 한껏 어설픈 글을 쓰는 일.
로또가 아니면 이런 여행은 평생 불가능했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