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동물병원 맞죠? 다행이네요. 그런데…… 꾸벅……
앗, 제가 여기서 잤나요? 벌써 하루가 지났다고요? 이런 실례가…… 네? 조금만 더 자면 땅에 묻어버리려고 했다고요? 간호사가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아 물론…… 제가 개구리긴 해요…… 병원비도 없고요……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도 맞아요…… 동물병원에서 개구리를 치료한 적도 없겠죠…… 하지만 제 잠자리는 제가 만들어야 되는 거라고요…… 억지로 파묻으면 생매장밖에 안 된다니까요…… 의사는 어디 있죠? 아, 주무신다고요…… 지금 몇 신데요? 오후 세 시요…… 졸릴 시간이네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더니 저도 너무 졸린데…… 꾸벅……
의사 선생님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틀 동안 충분히 눈치 채셨겠지만…… 요새 너무 잠이 와서 찾아왔어요…… 개구리는 겨울에 자고 봄에 깨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경칩 지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도 졸려요…… 아니요…… 아픈 덴 없어요…… 늙어서 기력이 딸리는 게 아니냐고요? 말도 안 돼요…… 이제 처음으로 겨울잠을 잔 거라고요…… 아직 죽으면 안 돼요…… 죽기 싫어요…… 꼭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꾸…… 꾸벅……
앗, 이 노래 <개구리 왕눈이> 맞죠? 정말 독특한 병원이네요…… 기상 음악으로 잠 깨울 생각을 하다니……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 핀다…… 흑…… 아, 우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저 좀 혼자 있게 내버려두세요…… 안 그러면 다시 자버릴 거예요…… 영원히 잠들어 버릴 거라고요……! 흐흑……
네, 이제 좀 진정이 됐네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수의과에서 심리 상담도 배우나요? 아무래도…… 괴로운 기억 때문에 자꾸 졸린 것 같아서요…… 개구리한테 무슨 기억이 있냐고요? 하…… 이 정도 사건이면 아무리 개구리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을걸요……
저 사실, 겨울잠을 엄청 설쳤어요…… 악몽도 많이 꾸고요…… 그러니까 지난가을에 잠자리를 찾는데…… 중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았지 뭐예요…… 땅을 팠는데 글쎄…… 하얀 막대기 같은 게 몇 개 묻혀 있는 거예요…… 이게 뭔가 싶어서 꺼내 봤더니 세상에나…… 개구리 뼈였어요…… 흐흑…… 해부 실습 때 쓴 개구리들을…… 거기다 몽땅 파묻어놓은 거예요…… 제가 본 건 몇 가닥뿐이었지만…… 그 밑에 얼마나 많은 뼈가 묻혀 있을지…… 안 봐도 뻔하잖아요…… 흐흐흑…… 바보같이 하필이면 그런 자릴 골라서…… 같이 있던 친구까지 그 꼴을 봤다니까요…… 다 저 때문이에요…… 엉엉……
짧은 생애였지만 무지개 연못처럼 아름다운 곳에는 살아본 적도 없어요…… 아니 사실 무지개가 뭔지도 몰라요…… 하늘에 뜬 길다란 일곱 빛깔 반원이라고요? 그럼 그렇지…… 저야 뭐 하늘 자체를 별로 올려다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네요…… 위를 보는 게 싫었어요…… 높은 데를 쳐다보면 사람하고 눈 마주치기 일쑤니까요…… 나를 보고 놀라거나…… 징그러워하거나…… 잡고 싶어 하거나…… 아무 관심 없는 눈빛…… 사람의 표정은 항상 그렇더라고요……
게다가 주기적으로 매년 늦봄이면 개구리들이 무더기로 잡혀 간다고 했어요…… 그때가 그 학교 해부 실습 기간이라나요…… 그러니 사람 쪽을 쳐다보고 싶겠어요? 도랑 밑바닥에서 우리 개구리끼리 옹기종기 숨어 사는 게 낫지…… 근처에 있는 모기 파리나 잡아먹고…… 저 살던 도랑이 비좁고 냄새는 났지만 모기 하난 참 많았거든요…… 모기는 살짝 비린 맛이 났는데…… 그게 바로 사람 피 맛이라더군요…… 다들 모기 사냥을 열심히 했어요…… 간접복수라도 하려는 거죠…… 하긴 모기 입장에서는 억울했을지도요……
봄마다 개구리가 잡혀간다는 건 그냥 풍문으로만 들은 소리였지……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없어요…… 다행히도 저는 실습 기간이 지난 뒤에 올챙이가 되었거든요…… 사람 눈을 피해 다닌 것 말고는 첫 여름도…… 첫 가을도…… 팔딱거리며 잘 지냈죠……
친구도 만났어요…… 참 씩씩하고 재미있는 개구리였죠…… 일부러 사람 앞에 폴짝 뛰어들어 놀래키기를 좋아했어요…… 그렇게 해도 잡힐 염려는 없다고 했어요…… ‘앗 깜짝이야!’ 하면서 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나요…… 저는 그런 표정도 보기가 싫은데 걔는 재밌었나봐요…… 저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우린 그런 거 안 따져요…… ‘앞다리 나오면 다 친구’라고들 하죠…… 그 친구가 겨울잠 준비하는 법도 알려준 거예요……
저는 그애랑 지내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겨울 동안 못 만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런데 그만…… 그 뼛조각들을 발견해버려서…… 흐흑…… 어떻게 거기서 벗어났는지 기억도 안 나요…… 어떻게 겨울잠 구덩이를 팠는지도요…… 아마 다 그 친구가 도와줬겠죠…… 정신이 들어보니 이미 땅속이었어요…… 그애는 어디로 갔을지…… 나 때문에 겨울잠 시기를 놓친 건 아닐지…… 겨울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러니 어떻게 잠을 제대로 잤겠어요……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바깥으로 나왔는데…… 그 친구는 보이질 않았어요…… 다른 개구리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른다고만 했어요…… 찾아도 찾아도 없으니까…… 이상하게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병원에 온 거예요…… 의사건 뭐건 사람 따위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애를 찾으려면 어떻게든 나아야 하니까……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니까……
그런데 잠깐…… 내 얘기 듣고 있어요? 지금 혹시 자는 거예요?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어떻게 이런 순간에 잠들 수가 있냐고…… 아무리 봄이라지만…… 아무리 오후 세 시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