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93일차
또다시,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왔던 그런 밤이 왔다.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오늘의 글감조차 결정하지 못한 암담한 밤. 심지어 오늘이 월요일이라니! 금요일까지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이 주제는 나중에 써야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대충이라도 지금 써보자'라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미루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대치를 낮추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석 달 내내 깨닫고 또 깨달았는데, 사람이 이렇게 안 변한다.
석 달 동안 브런치에 올린 글을 원고지 매수로 환산하니 620매 정도 된다. 책으로 만들려면 한참 뜯어고쳐야 하는 원재료지만, 어쨌든 대충 단행본 한 권 정도의 분량이 쌓인 것이다. 석 달에 책 한 권이라... 이렇게까지 빨리, 많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책은 1년에 한 권 정도만 써도 훌륭한 거 아닌가? ㅋㅋㅋㅋㅋ
내 한계를 넘어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서 답답한 직장인의 삶으로부터 훌쩍 점프해 달아나고 싶었다. 뭐라도 하나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건너갈 뗏목까지는 아니라도 튜브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런 희망 자체가 나쁜 건 아니겠지만 그 욕심 때문에 내가 나를 꽤 고생시켰구나 싶다.
하루에 딱 열 문장만 쓰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도 더 부실한 매거진이 되긴 했겠지만 내 심신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심리적 문턱이 낮아지고, 아무리 막막한 주제라도 '열 문장만'이라고 생각하면 가볍게 뛰어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