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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l 05. 2022

열 문장만 쓴다면

매일 발행 93일차

또다시,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왔던 그런 밤이 왔다.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오늘의 글감조차 결정하지 못한 암담한 밤. 심지어 오늘이 월요일이라니! 금요일까지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이 주제는 나중에 써야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대충이라도 지금 써보자'라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미루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대치를 낮추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석 달 내내 깨닫고 또 깨달았는데, 사람이 이렇게 안 변한다.


석 달 동안 브런치에 올린 글을 원고지 매수로 환산하니 620매 정도 된다. 책으로 만들려면 한참 뜯어고쳐야 하는 원재료지만, 어쨌든 대충 단행본 한 권 정도의 분량이 쌓인 것이다. 석 달에 책 한 권이라... 이렇게까지 빨리, 많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책은 1년에 한 권 정도만 써도 훌륭한 거 아닌가? ㅋㅋㅋㅋㅋ


내 한계를 넘어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서 답답한 직장인의 삶으로부터 훌쩍 점프해 달아나고 싶었다. 뭐라도 하나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건너갈 뗏목까지는 아니라도 튜브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런 희망 자체가 나쁜 건 아니겠지만 그 욕심 때문에 내가 나를 꽤 고생시켰구나 싶다.


하루에 딱 열 문장만 쓰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도 더 부실한 매거진이 되긴 했겠지만 내 심신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심리적 문턱이 낮아지고, 아무리 막막한 주제라도 '열 문장만'이라고 생각하면 가볍게 뛰어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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