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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l 09. 2022

밀린 일기

매일 발행 97일차(?)

출장과 야근으로 피곤했던 어제, 기어이 누워 잠들고 말았다. 비몽사몽 중에도 '안 되는데... 일어나야 되는데... 오늘치 글을 올려야 되는데... 이제 나흘 남았는데...' 생각하며 문득문득 깼다. 그 와중에 뭔가 머릿속으로 개요를 짜기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되새겨보니 당최 무슨 소리였는지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졸면서 구불구불 그려넣은 필기를 내려다보듯 헛웃음이 나온다. 그냥 오늘 두 편 쓰는 것으로. ㅋㅋㅋㅋ


국민학생 시절,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밀린 일기를 몰아 쓰곤 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엄마한테 날짜를 물어봐서 어찌어찌 써냈지만, 아무 기억 없이 잊혀진 날은 대책이 없었다.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더라도 '날씨 흐림, 이모네 집에서 사촌들이랑 베개싸움 함'이라든가, '날씨 구름조금, 엄마랑 동생이랑 도서관 가서 『웃음도 발명한 과학자』 읽음(어렸을 때 좋아한 과학만화. 지금도 제목이 기억나다니!)' 하는 식으로 달력에라도 메모해놨으면 좋았을걸.


일기뿐인가? 밀린 <탐구생활>이니 만들기 숙제 같은 것도 개학 직전에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탐구생활 되게 흥미로운 책이었을 것 같은데 몰아서 하니 힘들기만 했다. 개학 날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탐구생활을 보면 기가 죽었다. 나는 빈칸 채우기만도 바빴는데 어떤 아이들은 뭔가를 잔뜩 덧붙여서 책이 두툼해져 있었다. 뭐가 그렇게 쓸 말이 많고 그려넣을 게 많았던 걸까? 만들기 숙제만 해도, 내가 야심차게 만들어 간 등대(과학상자에 있는 꼬마전구를 넣어서 불이 켜졌다!)가 무색하도록 다른 아이들은 더더더 어마어마하고 예쁘고 신기한 작품들을 가지고 왔다.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아무튼 대단했다.


대학 시절에는 리포트가 그렇게도 쓰기 싫었다. 컴퓨터가 없어서 피씨방에서 밤을 새우곤 했는데, 컴컴한 피씨방에서 새벽 내내 시작도 못하고 인터넷 검색질만 하고 있는 기분이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니라 피씨방 요금도 시시각각 늘어나는데 말이다.


이처럼 벼락치기의 괴로움을 평생에 걸쳐 뼈저리게 체험해 온 나다. 미루기 습관을 고치기 위해 별짓을 다 해봤지만 본성이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미루는 인간이더라도 그럭저럭 나를 사랑하고(?)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도록 뭔가 관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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