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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ug 20. 2022

내 얘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것

영화 <히트맨>에서

최원섭 감독, 권상우 주연의 영화 <히트맨>을 봤다. 금요일 저녁 치킨을 뜯으며 가볍게 보기 적당한 영화였다.


(이하 스포)


어려서 고아가 된 준은 만화가가 꿈이지만, 국정원의 극비 프로젝트에 의해 암살요원으로 키워진다. 무적의 엘리트 요원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죽은 척 위장하고 탈출한 준. 이제 자유다! 마음껏 만화를 그리며 내 인생을 살리라!


그로부터 어언 15년 후.


준은 만화를 올리는 족족 악플만 달리는 웹툰작가가 되어 있다. 신분을 숨기고 결혼까지 했는데 월수입이 50도 안 돼 막노동을 한다. 중딩 딸조차도 ‘친구들이 아빠 만화 개노잼이래’ 한다. 풀죽은 준에게 딸이 하는 말.


“아니면 차라리 아빠 얘기를 솔직히 해봐. 쇼미더머니처럼. 왜 래퍼들이 자기 얘기 하는 게 얼마나 멋있는데. 나는 내 얘기를 랩으로 쓸 거야. 아빠도 아빠 얘기를 그려봐. 솔직하게.”


준이 한숨을 쉬며 먼산을 바라본다.


“내 얘기 하면...... 대한민국 다 뒤집어진다.”


<히트맨> 스틸컷


창작의 고뇌가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이후 스토리는 액션!!!! 와장창!!!! 코믹!!! 추격!!! 아빠!!!! 여보!!!! 너 이새끼!!!! 탕탕탕!!!!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나는 짧게 스쳐간 이 장면이 무척 마음에 남았다.


내 얘기 하면 대한민국이 뒤집어지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내 얘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어르신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 담당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참여자들의 진입장벽 중 하나가 ‘내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단순히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처음으로 쓰는 것만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글로는 그래도 내 얘기를 좀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정말 말이 없다. 뭐 별것도 아닌데 괜히 감춰두고 있는 것들도 많은 듯하다. 내 얘기라는 걸 굳이 억지로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진짜 비밀이어야만 하는지, 왠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웃겼던 장면. 난간에 거꾸로 매달려 만화 스토리를 고민하는 준. <히트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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