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사소한 것부터 엄청난 것까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하겠지. 그들의 머릿속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산책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쓸 수 있겠다. 100퍼센트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산책하는 1인의 의식의 흐름을 적어보고자 한다.
오늘은 웬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 6시도 안 되어 잠이 깼다. 월·화요일 휴가를 받았으니 나흘 연휴의 첫날이다. 세수를 하고 모처럼 이른아침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청바지에 7부 소매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서니 완연히 춥다. 서늘을 넘어 싸늘하게까지 느껴지는 바람이 분다. 다시 들어가서 긴팔로 갈아입고 나올까 잠시 갈등했지만 걷다보면 더워지겠지 싶어 그냥 가기로 했다.
걷다보면 온갖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내가 잘못했었나 싶은 사소한 일들, 예를 들면 이런 일.
10년도 더 지난 옛날, 일반인 대상 소설창작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창작 같은 걸 남에게 배울 생각이 없는, 뭐든 내멋대로 쓰고 싶고 쓸 수 있을 줄 알았던 초심자였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둘 핑계를 만들 겸 해서 주간 과정을 등록해버린 것이었다.
첫 수업에 들어가니 반장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으레 반장이란 가장 어린 사람이 하는 법이라고 분위기가 흘러갔다. 수강생들의 연령층은 대부분 40대 이상인 듯했고, 20대 청년은 나를 포함해 둘뿐이었다. “이중에 누가 제일 어리죠?” 수강생들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 말고 다른 수강생을 지목했다.
솔직히 나는 그 수강생보다 내가 더 어린 걸 알고 있었지만 반장 같은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모르는 척 같이 박수를 치며 반장 선출에 찬성했다. 꼭 반장이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장은 얼마 안 되어 수강을 취소했고, 결국은 내가 반장이 되어버렸다. 반장의 역할이란 회비를 걷어 강의 시작 전에 선생님 커피를 사 오는 것, 학기가 끝날 무렵 수강생들의 작품을 편집해서 작품집을 만드는 것 등이었다.
글쎄, 그 상황에서 꼭 솔직하게 ‘제가 제일 어린데요’라고 이실직고할 의무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어린 반장에게 잡일을 맡기는 것부터가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1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가 제일 어리지만 어리다고 해서 꼭 반장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밖에도 ‘그 단어는 쓰지 말걸’,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따위의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에 휘몰아치는 흰 구름이 저토록 아름답고, 싸늘하던 바람이 점점 시원하게 느껴지는 아침 산책 시간에 말이다.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샤프를 0.7mm짜리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수십 년간 써온 0.5mm 샤프심이 너무 잘 부러져서 0.9mm심을 써봤는데 그건 또 너무 두꺼웠다. 0.7 정도면 어떨까? 0.5나 0.7이나 그게 그거일까?
어쩌면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레귤러피자와 라지피자가 지름 차이는 3인치밖에 안 돼도 양 차이는 큰 것처럼 말이다. 핸드폰 계산기 앱을 열어 두 샤프심의 단면 면적을 계산해봤다.
0.25*0.25*3.14=0.19625
0.35*0.35*3.14=0.38465
옛날옛적 산수 시간에 배운 공식, '반지름*반지름*3.14'를 실생활에서 활용해보다니 왠지 뿌듯했다. 계산 결과 0.7심의 단면 면적은 0.5심의 두 배에 달했다. 0.7mm심은 0.5mm심보다 유의미하게 튼튼할 거라고 기대해봐도 좋겠다.
6시 20분경, 공원에 들어서자 트로트 음악이 울려퍼졌다. “사랑도 해봤고 이별도 해봤지”에서는 사랑 노랜가 싶다가,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에서 흠칫하고,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에서 사랑 아닌 우정 노래인 걸 알았다. 몇몇 어르신들이 나무에 화이트보드를 기대 세워놓고 음악에 맞춰 몸을 풀고 있었다. 야외 건강댄스 프로그램 같은 게 열리는 모양이었다.
언덕 쪽으로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였다. 드넓은 잔디가 찬란한 햇살을 받아 온통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침 조깅을 하는 운동선수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눈부신 아침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방금 지나간 선수들이 잠시 후에 또다시 내 옆을 지나가는 게 아닌가? 벌써 한 바퀴를 돌았다고? 선수들이 달리는 경로를 짚어보니, 평지에서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커다란 원형 코스였다. 내 걸음으로는 한 바퀴에 20분은 걸릴 거리 같은데 선수들은 몇 바퀴나 계속 뛰고 있었다. 대단하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금 이 글의 초고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예의 0.5mm 샤프로 A5크기의 드로잉북에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글 쓰는 데 두꺼운 드로잉북씩이나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딱딱한 받침이 있고 크기와 두께가 적당한 무선 노트가 문구점에 이것밖에 없었다.
쓰는 동안에도 선수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길목에 코치들이 서서 “00야, 니는 저기 노래 부르러 가야겠다. 다른 애들은 저만치 가는데” “00야, 그래가 체대 가겠나” “00 파이팅! 몇 개 안 남았다” 하고 훈수를 두었다. 노래 부르러 가야겠다던 선수도, 그래 가지고 체대 가겠냐던 선수도, 저런 잔소리쯤은 뚝딱 이겨내고 잘됐으면 싶었다.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 혼자 산책하던 누군가의 사고흐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 생각의 내용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머릿속에 온갖 기억이 불쑥불쑥 솟고, 고개를 흔들고, 다른 생각을 하고, 간혹 주위를 둘러보는 과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 기억에게 나는 쓸모없는 청중이다.
기억은 내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라지만,
나는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헛기침을 하고,
듣다가 안 듣다가,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중략)
기억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늘 현재보다 젊다.
기쁘긴 하지만, 왜 항상 그 타령이 그 타령인지.
모든 거울들은 내게 매번 다른 소식을 전해주는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기억과 공존하기엔 힘겨운 삶>, 『충분하다』,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