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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ug 25. 2022

머리와 발 사이의 거리

무심코 방을 나가려다가 왼쪽 새끼발가락을 뽝!!!!!!!!! 하고 의자다리에 부딪쳤다. 으악 소리와 함께 오른발로 방 안을 방방 뛰어다녔다. 이 정도면 골절이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자괴감이 너무 컸다. 2년이 넘게 그 자리에만 있었던 의자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눈앞의 방문만 보고 칠렐레팔렐레 걸어갔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머리와 발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발 같은 건 덜렁덜렁 매달고만 다니는 걸까?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덜렁이라고 하는 걸까? 키가 빌딩 높이쯤 된다면 또 모르겠다. 겨우 1.5미터 정도만 내려다보면 코앞의 쇳덩이가 보일 것 아닌가?


인터넷에 의존하는 현대인답게 컴퓨터에 달라붙어 '발가락 골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실금도 엑스레이에 잘 찍히나? 드디어 내 생애 최초로 깁스라는 걸 하게 되는 건가? 몇 년 전,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전기모기채가 발등에 수직으로 추락해 몇 달이나 통증이 지속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금이 갔든 부러졌든 어디라도 문제가 생겼던 건데, 많이 아프지는 않다는 이유로 그냥 살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머릿속에서 난리부르스를 추는 동안에도 책상 밑에 가려진 왼쪽 새끼발가락은 빨갛게 조금 부은 채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공처럼 퉁퉁 붓거나 시커먼 피멍이 들지도 않았다. 조심스레 눌러보고, 까딱까딱 흔들어봤다. 움직이는 데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다. '어라, 얘가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었나본데...?' 하긴 그동안 이 발가락들을 얼마나 강하게 키웠던가. 문턱에, 책상에, 기타 기억나지 않는 온갖 사물들에 얼마나 많이 부딪쳐댔던가. 그래서 이제는 '니가 그렇지, 한두 번이냐?' 하고 덤덤히 넘어가게 된 건가?


그로부터 만 하루가 흐르는 동안 또다시 발가락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다시 내려다보니, 기분 탓인지 아직 미묘한 붓기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갑자기 발이 저려오는 듯하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정말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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