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Feb 05. 2023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

전시회 후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 좋았다. 좋았던 건 맞는데, 저 작품도 예뻤고 그 작품도 멋졌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담? 인터넷에 전시회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나온다. 프랑코 폰타나는 이탈리아의 사진작가로 컬러사진의 선구자이고... 등등의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도슨트가 정말 멋진 직업이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들 도슨트 좋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촬영이 허용되는 전시라 작품 사진도 거의 빠짐없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를 안 해서 모르지만 아마 인스타에도 엄청난 사진이 홍수를 이루고 있겠지. 작가가 1960년대부터 구형 필름카메라로 몇 시간 또는 며칠을 기다려 겨우 포착한, 드론이 없던 시절이라 열기구를 타고 찍기도 했다는 사진 122점을 나는 30분 만에 찰칵찰칵 찍어서 죄다 소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전시회뿐인가? 영화 후기, 독서 후기, 여행 후기 등등 온갖 후기들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알찬 정보, 더 지적인 해석, 더 멋진 문장들을 이미 남들이 다 써놓았다. 그 많은 기사와 감상문들 속에서 어떻게 해야 털끝만큼이라도 나다운 티가 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대단한 글로 주목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쓰면서 재밌고 싶어서 그런다.


에라 모르겠다. 예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고, 즐긴다는 건 논다는 거고, 놀이란 얼마든지 내 맘대로 해도 된다(혼자놀기라면 더더욱). ‘내 방 벽에 붙여두고 싶은 사진’ 기준으로 몇 장을 뽑아, 그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츄파춥스 초코바닐라맛의 노랑-갈색 조합이 떠오른다. 색깔만 봐도 입에 단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맛있겠다. 츄릅.


소행성이 추락하고 있는 지구 멸망 직전의 저녁은 의외로 고요하다. 해 지는 풍경처럼 일상적이다.


쨍한 파랑과 동화적인 분홍의 대비가 경쾌하다. 아래쪽 나무 그림자가 위쪽 나무의 내면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뾰족한 푸른 잎을 펼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동글납작 작은 잎을 가진 잿빛 그림자가 숨어 있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왠지 힐링이 된다. 마음속에 겉모습과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수평선은 하늘의 것일까, 바다의 것일까? 하늘에도, 바다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틈일까? ......써놓고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런 문장을 먼저 썼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생각이 진짜 내 것인지, 어디서 주워들은 파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계선에 내가 있다.



컬러 사진이 처음 개발된 그 시절, 이토록 정성스레 포착한 세상의 온갖 색채가 얼마나 매혹적이었을까? 지금처럼 사진 촬영과 편집이 쉬워진 시대에는 경험하기 힘든 낭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작가의 말 한 마디.


풍경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풍경이 되어야 하고,
풍경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과 함께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