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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Feb 11. 2023

그칠 줄 모르는 헛된 결심, 아침 6시 글쓰기

또, 또, 또다시 어리석은 도전을 시작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동안 숱하게 결심하고 또 실패한, 7백 번 일어나고 7백 번 넘어진, 애증의 목표 ‘아침 일찍 일어나 글쓰기’.


퇴근 후 밤에 글쓰기가 왜 이렇게 숙제처럼만 느껴지는지, 보던 드라마를 결연히 끄고 노트를 펴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나는 더 이상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고민하다가, 원래 퇴근 후란 쉬어야 마땅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쉬다가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일, 타고 남은 불씨를 되살려 다시 불을 피우는 일은 어려운 게 당연한 것이었다.


저녁에는 아무런 부담 없이 뒹굴뒹굴 쉬기만 하고, 아침에 딱 2시간만 일찍 일어나 배터리 100%인 상태로 글을 쓰면 어떨까?


...라는 의식의 흐름을 지금까지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여러 지원군이 있었다.


1. 펭수 모닝콜

사실 나는 컴퓨터 펭수 폴더에 펭수 사진 1800여 장을 소장하고 있는 펭수의 오랜 팬이다. 2020년 1월 <놀면 뭐하니>를 보고 입덕한 뒤, 3년간의 코로나 시국과 지겨운 직장생활을 펭수 보는 낙으로 버텼고, 금요일 저녁 8시에 올라오는 새 에피소드를 보며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펭수 인형 펭수 달력 펭수 포스터 등등 오만가지 펭수 굿즈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사인회에서 은인과도 같은 한 팬이 펭수에게 모닝콜 음성 녹음을 부탁했다. 10초 남짓의 짧은 멘트 중 ‘일어나 펭클럽, 학교가야죠?’라는 정답고도 단호한 반존대에 또 한 번 치여, 이 모닝콜이라면 아침 기상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2. 첫 문장을 써드립니다

브런치를 돌아다니다 NOPA 작가님의 ‘첫 문장을 써드립니다’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아침 6시마다 단톡방에 첫 문장을 올려주시면 그날 자정까지 3문장~10문장 사이의 짧은 글을 써서 올리는 거다. 솔깃했다. 늘 내가 쓰고 싶은 글, 내 머릿속에 있는 글만 쓰다가 다른 누군가가 보내주는 뜻밖의 첫 문장을 보면 머리에 환기가 될 것 같았다. 3~10문장이라는 길이도 부담없이 쓰기에 딱 좋은 분량이었다. 당장 신청해 이번 주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즐거움도 크다. 같은 첫 문장으로 전혀 다른 글들이 쓰여지는 게 신기하다.


3. 졸리면 물 마시기

‘탈수의 주된 증상 중 하나는 졸음이다. 잠을 푹 잤음에도 졸음이 가시지 않는다면 탈수의 증상일 수 있다. 특히 평소 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면 만성 탈수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수분 부족을 알리는 ’탈수‘ 경고신호 7가지)’라는 기사를 봤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졸린 이유는 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을 안 마셔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졸릴 때 물을 마셔보니 조금 정신이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4. 오전에만 글쓰기

전에는 평일이든 휴일이든 하루종일 ‘글 써야 되는데... 글 써야 되는데’ 생각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오전에만 쓰고 깨끗이 털어버리기로 결심했다. 평일에는 6시부터 8시까지, 주말에는 6시부터 11~12시까지만 쓰고, 내일 쓸 글감을 적어놓은 뒤 실컷 놀고 일찍 잔다. 쓰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명확히 분리하니 생활이 더 단순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어릴 적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해라’ 하던 어른들의 말뜻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5. 졸려도 안 써져도 그러려니 하기

‘9시간을 잤는데도 졸리다니!’, ‘벌써 7시 40분인데 하나도 쓴 게 없다니!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지?’ 같은 자괴감이 들어도 ‘역시 난 아침형 인간은 못 되나봐ㅠㅠㅠㅠ’ 하고 포기하기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스려보기로 했다. 졸릴 수도 있고 안 써질 수도 있다, 오늘 졸리다고 내일도 졸리란 법은 없다, 안 써지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반은 온 거다, 라고 생각하며 물이나 한잔 더 마시는 거다.


6. 글만 쓸 수 있는 컴퓨터

소음이 거의 없는 일체형 중고 컴퓨터를 싼값에 샀다. 사양은 매우 낮지만 글만 쓸 거니까 괜찮다. 글 쓰려다 인터넷 서핑이며 영상 시청 등 딴길로 새지 않도록, 네이버·유튜브·넷플릭스 등 내가 아는 웹사이트를 브런치만 빼고 다 차단했다. 사용한 프로그램은 ‘WasteNoTime’. 차단한 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일 최대 시간은 0분으로 설정. 아예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것이다. 설정을 변경하려면 긴 무작위 문자열을 입력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뚫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나도 모르게 다른 사이트에 접속하려는 ‘순간의 충동’ 정도는 막아준다.


이렇게 단단히 전열을 갖추고 아침 6시 글쓰기에 도전한 지 오늘로 16일째. 오늘은 6시 42분에 작업을 시작했다. 슬금슬금 기상 시각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앞으로는 핸드폰을 책상 위, 물컵 옆에 두고 자기로 했다. 알람을 끄려면 무조건 책상 위로 올라와야 하도록. 끄고 나면 곧바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이번 결심은 얼마나 갈까. 이번엔 정녕 이 습관을 인생루틴으로 굳힐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또다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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