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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들의 우주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12)

by 이제

낮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책에 빠져들었다. 잠이 깰 만큼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는 건 신나는 일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게 된다. 오직 소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많다.


이십대 초반, 방학을 맞아 열흘쯤 고시원 방에 틀어박혀 『토지』를 독파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고개를 들자 50년 동안 그 시대를 살고 다시 태어난 듯했다. 방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지나갔는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얼떨떨한 기분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한국에서 태어나 『토지』를 모국어로 읽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강의도 과제도 없는 방학이라서, 그때 내게 스마트폰이 없어서, 『토지』 사이사이에 네이버 검색창과 유튜브 영상이 끼어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 가운데 『토지』의 반대편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가 있다. 두 소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치열하고 사실적인 『토지』와는 달리, 『히치하이커』는 황당무계한 상상과 장난기로 시끌벅적하다.


한국인 여성 작가 박경리는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엄청난 집념으로 심혈을 기울여, 수백 명의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대작을 써냈다.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굽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한편, 후배 작가를 위한 창작실을 짓기도 했고, 생명과 환경의 귀함을 역설하며 손수 텃밭을 가꿨다. 여든이 넘어 지병으로 타계한 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유고시집이 출간되었다. 어느 하나 존경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는 대가의 삶이다.


영국인 남성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히치하이커』를 BBC 라디오 대본으로 처음 썼다. 첫 장에서 지구를 폭파시키고 시작하는 SF 코믹 판타지로, 라디오에 이어 소설·드라마·게임 등 온갖 버전으로 다시 써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와중에도 원고 쓰기를 하도 미루는 통에, 편집자가 호텔에 가둬놓고 강제로 쓰게 한 적도 있단다. 쉰이라는 젊은 나이에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재기발랄하게 실컷 놀다 간 작가였다.


소설의 세계란 얼마나 넓은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경험과 상상을 통해 창조해낸 소설이 별처럼 많다. 나는 그중에 겨우 몇 개를 따다가 아담한 우주를 구성한다. 현실에서는 절대 가보지 못할 상상 속의 별들이고, 책장만 펼치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착할 수 있는 세계이다. 나는 대단한 다독가는 아니지만, ‘○○대학 추천도서 목록’과 상관없이 내 작은 우주에 만족한다.


시의 우주, 그림의 우주, 음악의 우주, 영화의 우주, 철학의 우주 등등 수많은 사람이 창조한 우주가 숱하게 많다. 꼭 예술작품이 아니라도 사람 하나하나의 삶 자체가 각기 하나의 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은 별이든, 울퉁불퉁한 별이든, 날씨가 궂은 별이든, 멀리서 보면 다 그냥 별이다. 꼭 남보다 더 크거나 밝아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크고 먼 별보다 작고 가까운 별이 더 밝아 보이기도 하는 법이니까.




이십대 때는 소설을 주로 읽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에세이도 좋아졌다. 소설은 상상의 이야기지만 에세이는 저자 본인의 이야기다. 에세이처럼 누군가의 삶을 속속들이 차근차근 들여다볼 수 있는 장르도 드물다. 요즘은 유튜브·관찰예능 등으로 타인의 삶을 접하는 경우도 많고 각각의 장점도 분명 있지만, 가차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영상물에는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독서는 ‘나란히 걷는’ 것 같다. 쉬어 가기도 하고 빨리 넘기기도 하면서 내 생각의 속도에 맞게 읽을 수 있다. 한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며 내 경험을 연상해도 된다.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댓글을 달면서 대화하듯 읽을 수도 있다.


에세이의 매력을 발견한 계기는 독립출판이었다. 독립출판이란 기성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자유롭게 책을 만들어 소량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유명인이 아니라도, 책이 작고 얇아도 독립출판물만의 매력이 있었다.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이보람)』, 『백수도 성공은 하고 싶지(최지혜)』, 『자책왕(강민선)』 등 제목만 봐도 공감되는 이야기들. 세상을 떠난 오빠가 어린시절에 쓴 그림일기를 그대로 옮긴 책(『오빠일기(안미지)』), 할머니가 평생 쓴 일기를 온 집안 식구가 함께 편집해서 만든 책도 있었다(『은송, 적다(송삼남)』).


서점가에 넘쳐나는 에세이집이나 B급 감성의 독립출판물에 대해 ‘요즘엔 아무나 책을 낸다’,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별로인 책이라고 남들에게도 별로일 거란 법은 없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하는 말도 재미있고 공감가고 유익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책은 어떻겠는가? ‘아무나’가 아니라 ‘누구나’라는 점에 에세이의 매력이 있다. 표절·혐오·가짜정보 등 악의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쓰지 말아야 할 책은 없다고 본다.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실무자에게 수강생들이 무엇을 가장 어려워하더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내심 글쓰기를 제일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경험이 적은 사람은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내 얘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제일 부담스러워한다’고 답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맞다, 그래서 내가 10년 동안 혼자서만 글을 쓰지 않았던가?


그러니 세상에 나와 있는 에세이 책들은 ‘내 삶에서 글감을 찾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한 권 분량의 글을 끝까지 써내서,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몇 번이고 수정해서, 편집을 거쳐 종이에 인쇄한 뒤, 남들에게 공개한다’는 만만찮은 고비들을 넘긴 결과물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만일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 강사라면 너무 아픈 상처나 사적인 비밀까지 꺼내 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겠다. ‘그때 힘든 일이 있어서’라는 식으로 넘어가도 된다. 각색을 하거나 가명을 활용해도 된다. 생애 전체가 아닌 특정 시기의 특정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써도 된다. ‘아무튼 시리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써도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굴튀김에 대해 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천 사람이 굴튀김 얘기를 쓰면 천 편의 다른 글이 나올 것이다. 각각의 굴튀김 얘기는 쓴 사람의 삶과 개성이 묻어 있는 그 사람만의 글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나 책 한 권 분량의 자기 얘기는 있다고 믿는다. 누구든 자기 책 한 권쯤은 만들어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정년퇴직을 앞둔 상사가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 눈이 번쩍 뜨였다. ‘오, 이분이 책 쓰기에 관심이 있었다니! 대체 어떤 내용일까!’ 첫 번째 상사가 쓰고 싶은 책은 성경 말씀을 자기 식대로 해설하는 책이었다. 엥? 두 번째 상사가 쓰고 싶은 책은 자신만의 주식투자 노하우였다. 어…… 음…… 그게……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별로인 책이 남들에게도 별로일 거란 법은 없다. 부장님의 성경 이야기나 국장님의 주식투자 노하우도 누군가에게는 유익한 정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뜻밖이었다. 수십 년 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첫 책을 쓴다면 당연히 자기 삶을 돌아보며 소중한 기억들을 기록하고 싶을 거라고 넘겨짚었던 것이다. 부장님 국장님의 인생 회고록 또한 그다지 재미는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자기자신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책 아니겠는가? ‘굴튀김에 대한 글’은 납득했으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글’에는 멈칫한 내가 이상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니!


어쨌거나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든, 내 삶을 남들에게 보이기 부담스러워서든, 개인적인 내 얘기보다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있어서든,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출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글밥이 적거나 문장이 서툴거나 제목이 유치해 보인다고 함부로 얕잡아볼 일도 아니다.




멀리 돌아 왔지만 이날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문학동네)였다. 대공황 시기에도 떼돈을 벌며 승승장구한 뉴욕의 금융 갑부와 그의 아내에 대한 책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4개 버전으로 들려주면서 감춰졌던 진실을 찾아낸다. 책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이 책 한 권에 소설·자서전·에세이·일기 각각의 매력과 한계가 모두 담긴 점이 흥미로웠다.


1부는 이들 부부의 성공과 비극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가는 자신의 편견 섞인 가치관과 창작의도에 따라 현실을 해석하고 상상력을 더한다. 이를 통해 소설이 현실보다 드라마틱해지기도 하고 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2부는 갑부의 미완성 자서전으로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제일 멋대가리 없게 만드는 방법을 보여준다. 성공한 부자가 돈 주고 대필작가를 고용해 제 자랑과 꼰대 소리를 실컷 늘어놓은 뒤 자신을 한껏 위대하게 포장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남을 낮추고, 약자의 목소리는 짓눌러 숨기는 글.


3부는 자서전을 대필한 작가가 50년 후에 쓴 회고록으로, 작가 자신의 삶과 대필 당시의 경험을 솔직하게 기록한 글이다. 갑부와 아내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글을 써 왔는지,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4부는 갑부의 아내가 쓴 일기다. 다듬지 않은 날것의 일기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토막난 글들에서도 행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일기가 일기장에만 갇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결국 진실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소설을 쓴다고 한다. 책 읽는 친구를 ‘재수없다’며 따돌리는 일까지 있다니 앞날이 막막해진다. 부디 그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정말 인간 작가가 사라지고 종이책이 사라지고 책 읽는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퇴물 취급을 받는 시대가 와도 나는 책을 읽고 만들 테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결국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s. 책 쓰기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사)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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