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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과 브레이크를 둘 다 꽉 밟는 사람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18)

by 이제

아침에 일기를 쓰며 오늘은 뭘 할까 고민하다 문득 목욕탕이 떠올랐다. 주말 아침의 목욕탕이라니, 이게 얼마 만인가! 한때는 건선이 심해 못 갔고, 현대의학의 힘으로 호전되자 코로나가 터져 영업이 중단되었고, 그렇게 점점 내 머릿속에서 목욕탕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다. 장장 십여 년 만에 목욕도구와 속옷을 챙겨 들고 목욕탕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그림책 『장수탕 선녀님』(백희나, 책읽는곰)이 떠올라 마음이 들떴다.


목욕탕은 힐링이었다. 온탕보다 냉탕이 더 좋았다. 온몸에 와닿는 찬물의 감촉과 팔이 둥실 떠오르는 부력을 느끼며, 촥촥 물을 뿌리는 ASMR을 배경으로 멍하니 벽을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명상 아닌가? 이제 보니 목욕탕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아날로그 휴식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목욕탕에는 일거리도 핸드폰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간다. 아무런 꾸밈도 의무도 없이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시원한 물속에 들어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얼마 전 받은 상담으로 꽤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퇴사를 결정한 뒤로도 반 년쯤 더 출근을 했다. 남은 임기는 끝까지 채우면서 인수인계를 충분히 하기로 협의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 매달 마감에 허덕이며 기나긴 말년을 버텼다. 하루빨리 여름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쩔 수 없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직장을 그만둬 봤지만 공무원을 그만두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너무 큰 사고를 친 건 아닐까?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지면 어쩌지? 그만두고 나서 마냥 빈둥대거나 허구한 날 계획만 세우며 세월을 보내게 되면? AI나 기후위기로 대재앙이 닥쳐서 공무원만 살아남는 세계가 펼쳐진다면?


자유를 얻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막상 자유로워지면 제자리에 드러누울까봐 걱정이 됐다. 내가 나를 잘 컨트롤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남에게 채찍질당하기보다는 집에서 내가 나를 채찍질하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채찍질을 당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나는 과연 채찍질 없이는 꼼짝도 안 할 사람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채찍에서 벗어나봐야 알 수 있을 거였고, 결과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큰 모험이었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러셀 로버츠, 세계사)에 따르면 퇴사를 할까 말까, 결혼을 할까 말까 같은 고민은 ‘답이 없는 문제’다. 미래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통한 방법이 나에게도 통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면 각 선택지의 장단점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며 선택을 미루기보다는 끌리는 대로 일단 선택해 전진하라는 것이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때 가서 또 다른 변화를 꾀하면 된다. 모험에는 우여곡절이 있는 법이니까.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내가 상상하는 나쁜 결과들은 상상일 뿐이고, 퇴사 이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월급이 없어지면 굶어 죽을까 불안했지만 내가 과연 굶어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을까? 직장에 묶여서는 못 했던 일들을 크든 작든 이것저것 해보게 될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선택이 나를 이렇게까지 멀리 밀고 왔듯이 퇴직이라는 선택도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공무원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상상조차 못 하는 미지의 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차피 결정은 내려졌으니 미련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5년간 버틴 것도 잘한 것이고, 지금 탈출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결심이 확고하다 해서 불안감이 깨끗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책의 초고를 퇴직 전까지 다 써내고 싶은 조바심을 느꼈다. 그래야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어서 그만두는 거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남들처럼 ‘환승이직’까지는 못 하더라도, 이 길에서 뛰쳐나가면 곧장 저 길에서 달려야 할 것 같았다. 가족에게 퇴직 결정을 알리지도 못했다. 이미 돌아갈 다리를 폭파해버렸다는 소식을 차마 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퇴직을 3개월쯤 앞두고 ‘직장인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끝까지 누리고 갈 심산이었다. 상담이 더 절실히 필요했을 때는 막상 너무 바빠서 엄두도 못 냈던 상담이었다. 대면상담은 이미 예약이 꽉 찼고 전화나 ZOOM은 어색해 채팅상담을 선택했다. 신청 서식에 상담요청 사유를 적어야 했는데, 결국은 이거였다. ‘공무원 생활이 힘들어 때려치우고 다른 꿈을 찾기로 결심했는데, 나를 믿지 못하겠고 미래가 불안하며 가족의 실망이 걱정된다’. 상투적일 만큼 흔한 고민이었다.




첫 회기에 상담사가 ‘TCI 기질 및 성격검사’를 권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얼씨구나 하고 검사를 받았는데, 다음 시간 결과지를 받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래프 모양부터가 심상찮았다. ‘자극추구’와 ‘위험회피’는 극도로 높고 ‘사회적 민감성’은 바닥이었다. 이게 뭐지? 자극추구와 위험회피가 둘 다 높을 수도 있나? 사회성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무려 이 정도라고?


상담 내용과 나중에 찾아본 정보를 종합하자면 이랬다.


TCI는 사람의 기질과 성격을 분석하는 검사다. 기질이란 자극에 대해 저절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을 뜻하며,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기본 틀이다.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4개 척도로 측정한다. 한편 성격은 기질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발달한다. 성격이 성숙할수록 기질적 특성을 잘 조절할 수 있다. 성격은 ‘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 3개 척도로 측정한다.(『현대 심리평가의 이해와 활용』, 박영숙 외, 학지사, 343~344 참조)


상담사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달려나가려는 기질과 멈추려는 기질이 둘 다 강해서 ‘접근-회피 갈등’이 크다고 했다. 하고픈 게 너무 많아 막 지르는데 한편으론 겁도 많고 걱정도 많아 내적 갈등이 심하다는 거다(과연 그랬다!). 욕심이 많아 스스로를 들볶는데 심리적 근육이 약해 금방 포기한다(어쩐지!). 액셀과 브레이크를 둘 다 꽉 밟는데 연료통까지 작아 기름이 금방 닳는 격이란다(이럴 수가!). 나와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지 못하고, 내 감정을 말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두려워해 거리를 둔다(역시!).


당혹스러웠다. 이런 차가 앞으로 나갈 수는 있나?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이 모양이었던 걸까? 이런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나가야 하나? 암담한 심정으로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뒤따른 조언은 대략 이랬다.


모든 기질에는 장단점이 있고 어떤 기질이 특별히 ‘잘못된’ 건 아니다. 타고난 기질적 반응에 그대로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 기질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성격을 발달시켜 기질의 장단점을 잘 활용하면 된다. 나는 열정적인 면과 신중한 면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 액셀과 브레이크를 엉뚱한 데서 막 밟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밟는 연습을 하면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다.


기질을 잘 조절하려면 나를 돌보고 남과 협력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연료통이 작으므로 이것저것 막 저지르면 안 되고 힘을 나눠서 규모 있게 써야 한다. 걱정과 자책 등 불필요한 곳에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하지 말고, 너무 많은 걸 하려고 스스로를 들볶지 말고, 자기자신에게 친절해져라. 100명 중 50명이 하는 고민을 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100명 중 한두 명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내가 유독 걱정이 많다는 뜻이다. 열기구에서 모래주머니를 내려놓듯 의식적으로 걱정을 덜어내야 한다. 또한 남에게 내 감정을 말하지 않고 비언어적으로 드러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적절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기타등등……


나는 나를 잘 아는 줄 알았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나를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온갖 책을 읽고 내 심리를 분석하고 깨달음을 얻고 계획을 짜고 결심을 하며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게 ‘할까 말까’ 식의 고민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내가 그렇지 뭐’, ‘어쩌면 남들도 다 그렇겠지’, ‘더 노력해서 극복해야지’, ‘책에서 방법을 찾아봐야지’라는 식으로 혼자 생각했을 뿐, 기질적으로 그런 갈등이 특히 심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그중 하나였다는 건 몰랐다.


이런 검사를 진작 받아봤다면 어땠을까? 내가 어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 다른 차들과는 뭐가 다른지, 특별히 까다로운 부분은 없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살았다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이 자동차는 왜 이 모양일까, 왜 벌써 기름이 떨어졌을까, 어떻게 고쳐야 할까, 이 상태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 답답해만 할 게 아니라 ‘점검해보니 이 자동차는 이런 특징이 있군, 연료통이 작으니 아껴 써야겠군, 이 부분이 뻑뻑하니 기름을 쳐야겠군’ 하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나갔다면.




‘접근-회피 갈등’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이런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재밌겠다며 온 교실을 누비고 다니는 나,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위험하다며 사사건건 가로막는 나, 창가 뒷자리에 앉아 뭔가 계속 끄적이는 나, 숙제 안 한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빨리 하라고 다그치는 나, 숙제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나, 어려운 숙제를 붙들고 괴로워하는 나, 다 포기하고 구석에 찌그러져 자책하는 나, 과자를 먹으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나 등등 별별 아이들이 가득한 혼돈의 교실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담임이 된 기분이었다.


상담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여러 악기로 하모니를 만들듯’ 그 감정들을 잘 조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제일 못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이 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일일이 설득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든단 말인가? 머릿속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다양한 요구가 복잡하게 부딪치는 갈등상황을 만나면 그냥 도망쳐 혼자 있고만 싶었다. 한때 교사로 일해보기도 했지만 교사가 되기에는 리더십이 너무 없었다. 아이들이 싸우면 교사답게 지도를 해야 할 텐데, 얘 말도 맞고 쟤 말도 맞는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그런 내가 이 카오스를 어떻게 지휘한단 말인가?


4회차의 상담은 너무나 짧았다. 벌써 마지막 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나는 급박하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냐고. 마지막 조언은 대략 이랬다. ‘나라면 그중 가장 나다운 아이에게 주인공을 자주 시키겠다.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을 바꿔주면서 모든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떤 감정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며,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힘도 실어주고, 칭찬도 하고, 엄하게 다스리기도 해야 한다.’


그것으로 상담이 끝났고, 나는 닫힌 채팅창을 바라보며 ‘주인공’이라는 단어를 한참이나 곱씹었다. 전에는 생각도 못해본 개념이었다.


혼돈의 내면학급을 보며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학급회의를 열어서 모든 감정들의 요구를 듣고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하나? 하지만 그런 최적의 합의를 내가 과연 이끌어낼 수 있을까? 지금은 ‘책 쓰기’ 시간인데 치킨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고 싶은 내가 제일 많은 지지를 받으면 어떡하지? 그냥 하자는 대로 해야 되는 건가? 아니면 말 안 듣는 아이 훈육할 때처럼 단호히 정색하고 ‘안 돼’라고 말하며 책 쓰기에 집중시켜야 하나? 지금까지 수천 수만 번 ‘안 돼’를 해봤지만 말을 안 듣던걸?


다시 말해 나는 매순간 모두에게 똑같은 발언권을 주든지, 누구 하나가 다른 감정들을 압도해 싹 조용히 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줄 알았다. 활동에 따라 주인공을 바꿔주면서 주도권을 배분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분명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와 슬픔이와 버럭이 등등이 번갈아 조종간을 잡는 모습을 봤는데도 말이다.


내게 아날로그 휴일이 왜 필요했는지, 전자기기 없는 하루가 왜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졌는지 짐작이 갔다. 이날은 ‘조용히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나’가 주인공인 날이었던 거다. 호기심 많은 나, 자꾸 핸드폰을 보고 싶은 나, 할 일을 미루는 나, 잔소리를 해대는 나,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 나 등등에게 방해받지 않는 안전한 하루여서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거다.


다른 감정들에게도 돌아가며 주인공을 맡기면 된다. ‘지금은 드라마를 봐도 되는 시간이야. 드라마 덕후가 앞에 나오고 잔소리꾼은 들어가 있어’라든지, ‘지금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야. 아웃사이더는 다음에 시간 줄 테니 기다려’라는 식으로 주인공 중심의 질서를 만들면 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전보다는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내가 나를 ‘컨트롤’하거나 ‘채찍질’하며 목표를 향해 혼자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상황과 감정을 살펴 역할을 잘 맡겨야 하는 거였다.




생각에 빠져 냉탕과 사우나를 왕복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루종일 죽치고 있어도 좋을 기세였다. 하지만 점심밥을 먹고 싶은 나, 공원 벤치에 앉아 힐링하고 싶은 나, 글을 쓰고 싶은 내가 줄을 서 있었으므로 적당히 자제하고 물에서 나왔다. 머리를 말리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자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장수탕 선녀님은 요구르트를 좋아했지만, 나는 더 양이 많은 바나나우유를 골랐다. 탈의실 평상에 앉아 달달시원한 우유를 쫙 빨아들였다. 지금 이 순간, 마음속 교실은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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