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퇴사여행
게스트하우스의 유리창 밖에서 거대한 운석들이 노랗게 불타며 날아왔다. 깜짝 놀라 내다보니 여기저기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어이 멸망의 그날이 왔구나. 나가봤자 별수도 없겠지만 본능적으로 캐리어에 짐을 쑤셔넣고 뛰쳐나가다 잠이 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밖에도 스펙터클한 꿈들을 잔뜩 꾼 것 같았다. 회사에서 문제가 터져 난리법석을 떠는 꿈도 있었다. 자고 일어난 게 아니라 방금까지 일하다 퇴근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꿈이었다. 운석 충돌도 직장 일도 모두 꿈이었다. 창밖에는 파란 하늘과 자유로운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미 탈출한 것이다. 나가봤자 별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에 이런 해방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국이었다. 퇴사 날 바로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다. 항공권을 예매한 뒤에 특별휴가가 생겨 마지막 날을 하루 앞당겼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천공항 근처에서 1박을 하고 공항 구경이나 실컷 해보기로 계획을 바꿨다. 숙소를 나와 버스 정류장에 가니 히잡을 쓴 여행객이 벤치에서 비켜 앉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Thank you.”라고 한마디 하기가 얼마나 쑥스럽던지! ‘땡큐~ 쌩유~’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실제로 외국인에게 th발음을 갖춰 ‘Thank you’라고 말해보는 건,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 원어민 영어수업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인천공항은 놀랄 만큼 거대했다. 수속 카운터가 너무 많아 끝이 보이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저마다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공항 내 카페에 앉아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사람 구경을 했다.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 전망대에 가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고개를 들어올리다가 어느 순간 뒷바퀴까지 슝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나도 저렇게 날아가서 오늘 밤은 다른 나라에서 자게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가 떠나온 직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동료들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약간의 지연 끝에 드디어 내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와우! 날고 있어! 땅이 자꾸 멀어지잖아! 우와! 이륙할 때 무서울까봐 우황청심원이라도 사 먹을까 고민했는데 역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살짝 무섭긴 했지만 설렘이 훨씬 컸다. 나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창밖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고속버스라도 탄 듯 덤덤하게 앞만 보는 주변 사람들이 신기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이어 엄청난 심심함이 몰려왔다. 저가항공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서 보내는 5시간은 너무 길었다. 잠도 오지 않고 책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창밖의 야경은 신기했지만 그래봤자 그 야경이 그 야경이었다. 베트남도 먼데 다들 유럽이나 미국은 어떻게 가는 걸까? 옆자리 분이 나눠주신 청포도 알사탕 두 개만이 가뭄의 단비였다.
인고의 시간 끝에 겨우 다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 후끈한 밤공기가 확 덮쳐왔다. 픽업 피켓을 든 베트남 택시기사들, 밤하늘 아래 무성한 야자수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ATM 현금 인출과 유심 교체 미션을 완수한 뒤, 미리 신청해둔 픽업차량을 타고 호이안으로 향했다. 낯선 나라의 밤거리, 낯선 언어로 된 간판과 표지판들, 영업이 끝난 가게들이 쉼없이 창밖을 스쳐 지나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 올드타운에는 수백 살 먹은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층빌딩 하나 없이 모든 건물이 나지막했고, 차량을 통제해 거리를 맘 편히 활보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러 나라 말로 대화를 나누며 지나갔다. 카페 야외석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는 이들도 많았다. 파란 하늘에 파란 강물, 노란 벽에 붉은 지붕, 형형색색으로 꾸민 전통 등, 짙푸른 나무에 만발한 꽃들로 어딜 보나 생기가 넘쳤다. 회색 건물 회색 차도만 보고 살다가 갑자기 총천연색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무채색과 평면 일색의 깔끔한 미니멀 디자인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채도가 높고 장식이 많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풍경이 오히려 더 취향에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이안 숙소를 2박만 예약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다낭에서는 장장 12박 동안 바닷가 호캉스를 즐겼다. 오래 머무는 만큼 차분하게 지난날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 했지만 막상 가보니 사색은 개뿔, 머리를 텅 비우고 놀기에도 바빴다.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통유리 바에 앉아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콜라를 마시고, 골목을 걷다 눈에 띄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낯선 메뉴를 주문했다. 서점을 찾아가 베트남어로 된 수많은 책과 문구류를 홀린 듯이 구경하기도 했다. 어쩌다 일찍 일어난 날은 바닷가로 나가 일출을 봤다. 새벽 대여섯 시만 돼도 해변 곳곳에서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백 명도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른아침 햇살을 받으며 줄을 맞춰 체조를 했다. 보기만 해도 기운이 솟는 듯했다.
사실 내 일과는 거기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늘 하던 대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카페에 가고 쇼핑을 하고 낮잠을 자고 드라마를 봤다. 그런 나를 둘러싼 환경이 한꺼번에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 같으면 마감일을 앞두고 정신없이 뛰어다녔을 시기에, 한가롭게 낯선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놀고먹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할 일이 없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도중에 사흘 동안 친구가 다녀간 게 유일한 이벤트였다. 고등학교 때 만난 25년지기로, 만 40세가 되면 같이 호주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넓은 사막에 가보고 싶었고, 친구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라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고 싶다고 했다. 바쁘게 살다보니 호주여행은 흐지부지됐지만 이참에 짧은 동남아 여행이나마 즐길 수 있었다. 불꽃축제와 대규모 공연도 구경하고, 내가 몰랐던 유명 관광지들도 알차게 둘러봤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나는 무서워서 난리를 쳤지만 친구는 멀쩡했다.
어느새 보름간의 여행이 끝났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익숙한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진짜 내가 베트남에 다녀온 건지 실감이 안 났다. 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했더니 잠이 쏟아졌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영화관에 가서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는 불안이에게 덕통사고를 당해버렸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서의 새 일상이 시작되었다. 퇴사여행의 장점은 집에 돌아와서도 내일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도서관에서 창밖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온전히 혼자 준비해서 외국에 다녀온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될 것 같다는 사실을. 그 힘의 정체는 성취감과 자신감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도 해낼 수 있고, 낯선 곳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작은 근거를 얻은 것이다. 성취감을 얻기 위해 꼭 뚜렷한 성과를 내거나 남을 이겨야 하는 건 아니었다. 잘 노는 것도 성취일 수 있었다.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제일 무난한 관광지로 딱 한 번 가봤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 누구의 그 어떤 여행도 부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의 추억도 점점 흐려지겠지만, 그때 그런 일도 있었지, 혼자 여권을 만들고 온갖 생소한 수속을 밟아 자유여행을 준비한 적이 있었지, 퇴사 날 바로 공항버스를 타고 노을을 향해 달려간 적이 있었지, 낯선 나라의 공항을 처음으로 나서던 순간이 있었지, 무자비한 땡볕 속에서 오색찬란한 거리를 걷던 적이 있었지, 호텔 옥상 바에서 바다를 보며 콜라를 마신 적이 있었지, 호텔리어와 서툰 영어로 대화한 적이 있었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며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지, 공항으로 친구 마중을 나간 적이 있었지, 냄새가 무시무시한 두리안을 눈 딱 감고 깨물어본 적이 있었지, 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을 모두 내 힘으로 무사히 즐겁게 해냈었다고.
여행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를 되돌아볼 계기이기도 했다. 20인치 캐리어 하나 들고 외국에 간다면 뭘 꼭 가져가고 싶은지. 한정된 여행 기간 동안 뭘 하면서 지내고 싶은지. 이것은 곧 소유와 시간에 한계가 있는 ‘삶’이라는 경험 안에서 내가 뭘 택해야 할지, 뭘 포기해도 될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