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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책 만들기, 시작!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27)

by 이제

2주 전부터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대표님이 온다는 구립도서관 홍보문자를 보자마자 ‘이건 운명이다,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9년 전 첫 독립잡지를 만든 것도 스토리지북앤필름 강좌를 듣고 나서였으니까(9년이라니, 세월아……). 작년 초에도 출판사 창업특강을 들었다. 여기서 대중교통으로 해방촌까지 가기가 만만찮았는데, 이게 웬 떡이냐!


사실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 출판사 등록을 할까 말까, 대형서점과 거래하며 ‘사업’처럼 운영할까 독립출판 창작자로서 활동할까, 한마디로 ‘대표’냐 ‘작가’냐 그것이 문제였다.


1인출판사 창업에 대한 책들을 보면, 진짜 막 정장 입고 미팅 다니며 관계자들과 일 얘기를 나누는 대표님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았다. 딱 봐도 프로 느낌이 나는 멋진 기획서를 써서 유능한 프리랜서들을 섭외해 뽀대나는 책을 만들고 매일 판매량을 체크하며 다음 전략을 세워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소소하게 꼼지락꼼지락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싶을 뿐인데.


이번 워크숍 첫 시간에 그 오랜 고민의 실마리가 잡혔다. 독립서점을 운영해보니 독립출판과 기성출판의 소비층이 달랐다는 것이었다. 기성출판 소비자는 가격에 상응하는 퀄리티나 부피감을 기대하지만, 독립출판 소비자에게는 ‘내 마음에 드는가?’가 중요하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교보문고에서 사는 책과 독립서점에서 사는 책은 달랐고, 책에서 기대하는 것도 달랐다.


내가 애초에 독립출판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뭐였는지 새삼스레 돌아봤다. 독립출판물의 다양성과 자유로움, 소소한 목소리들, 귀여운 허술함, 신선함이 좋았다. 대단한 작가나 셀럽이 아니라도 자기 스타일대로 자기 목소리를 묶어낼 수 있다는 것. 상품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매력을 알면서도, 왠지 이제는 프로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몸에 안 맞는 옷을 섣불리 입으려 했던 게 아닐까?


‘프로’의 반댓말은 반드시 ‘아마추어’일까? 프로는 항상 아마추어보다 멋지고 유능하고 생산적이고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고 기타등등인 걸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그렇게 프로답게만 살아야 할까? 돈을 벌기 위한 차선책을 선택했다가 결국 못 버티고 튕겨져 나온 일이 몇 번이었던가? 물론 그 선택들도 내 인생의 서사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딱 2년만이라도(=돈 떨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최선을 선택하면서 살아보기로 했다. ‘제일 하고 싶은 건 1이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2를 선택해야겠지’라는 생각은 그만해보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만큼만 해보자.




강의를 듣다보니 불현듯 ‘내가 너무 많이 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계획으로는 20회쯤 연재한 뒤 책으로 묶으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계속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긴 책을 써본 적이 없었으므로 쓸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게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반 년 가까이 연재를 했는데, 슬슬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던 참이었다. 이 책 한 권에 내 생각과 경험을 다 때려넣어야 하는 게 아닌데 너무 멀리 왔나? 끝맺을 시점을 지났는데도 계속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책 만들기라는 무시무시한 다음 단계를 미루기 위해서.


다행인지 뭔지, ‘과연 이 글을 책으로 만들어도 될까’라는 고민은 없다. 글만 있으면 책은 무조건 만들 수 있다. 만들면 과연 팔릴까 싶긴 하지만, 안 팔린대도 만들긴 만들 거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책 안 팔리는 경험도 해봐야 구색이 맞지 않겠는가? 작가든 학자든 연예인이든 무명시절 없는 사람은 왠지 매력이 없다. 삶은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나는 이 서사가 촘촘한 성공들로만 채워져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바라겠지만 많이 내려놨다……


결론적으로, 이쯤에서 연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책 편집에 들어가려고 한다. 여는글, 닫는글, 부록 등등 몇 가지 추가 원고를 쓰고, 기존 글을 전체적으로 뜯어고치고(꽤 줄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편집과 디자인 등등 흥미롭고도 골치아픈 미션들을 차례로 클리어해야 한다. 얼마나 걸릴지 확실치는 않지만 석 달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아예 잠수를 타기는 뭐하니, 앞으로는 평소에 쓰는 일기를 최소한만 편집해서 짤막한 근황 정도만 올릴 생각이다. 발행일도 화요일 저녁으로 옮기겠다. 나중에 진짜 바빠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계획은 그렇다. 하긴 직장인이면서 독립출판을 하는 작가도 많은데 백수가 뭐 그렇게까지 바쁘려나 싶기는 하다.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린다. 지금의 독자가 언젠가는 ‘나 이 사람 완전 무명일 때부터 읽었잖아!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라며 자랑할 수 있도록 잘되고 싶지만 보장은 못 하겠다.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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