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25. 6. 16.~25. 6. 22.
두 달 만에 책 만들기, 어쩌면 생각보다 엄청 힘든 일은 아닐지도 몰라. 누가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딱 일주일 준다. 그 안에 못 만들면 죽여버리겠어’ 협박한다면 일주일 만에도 어떻게든 만들지 않겠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어떻게든 그 안에 해낼 계획을 짜겠지.
사실 나는 책 만드는 순서를 다 알고 있어. 이미 해본 일이잖아? 회피하느라고 애써 기억 속에 묻어뒀을 뿐이지... 일주일 만에 책을 만들어야만 한다면 아마도 이런 순서로 하겠지.
월요일: 오전 10시쯤 협박을 받는다. 그날 하루쯤 잡아서 에필로그, 프롤로그 등 추가 원고를 대충 쓴다. 하루 동안 무조건 끝내고, 맘에 안 들어도 그게 내 한계임을 인정한다.
화요일: 며칠 전 교정지에 메모해놨던 수정사항을 반영한다. 고치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은 부분은 걍 다 날려버린다. 일주일 만에 만들라고 했지, 잘 만들라고는 안 했잖아?
수요일: 구청에 가서 출판사등록을 하고 사업자통장을 만들고 ISBN 신청을 하는 등 각종 잡무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정리한다. 어제 완성한 전체 원고를 인쇄해 가방에 넣고 외출. 바깥일을 처리하면서 틈틈이 원고를 수정한다. 바쁜 날이겠군...
목요일: 본문디자인을 하고, 표지도 걍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한다.
금요일: 디자인된 버전으로 인쇄해서 최종 검토 및 수정.
토요일: 동네 제본집이든 인터넷이든 아무데나 제일 빨리 만들어주는 곳에 인쇄제본을 두 권만 퀵으로 주문한다. 일주일 만에 만들라고 했지, 많이 만들라고는 안 했잖아?
일요일: 쉬면서 퀵을 기다린다. 이 와중에 쉬는 날까지 확보하다니 대단쓰...
월요일 아침: 완성된 책 한 권을 협박범에게 내밀고, 한 권은 내가 갖는다.
캬~ 스릴 넘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라고, 대충 하려면 일주일 만에 해낼 수도 있는 게 책 만들기야. 그러니까 두 달 만엔 분명히 할 수 있어.
(국제도서전 표 없어서 못 감) 참 희한해? 사람들이 점점 책을 안 읽는다는데 도서전은 왜 매진되는 거지? 책보다 ‘행사’가 인기가 많은 건가?
말과 글의 종결어미가 다른 한국어의 특성에 대해서 생각하다가(글 문장은 대부분 ‘다’로 끝나는데 말은 그렇지 않음), 말할 때도 ‘다’로 끝나는 경우가 있나 생각하다가, “어제 병원에 갔다? 그랬더니 의사가...”에서 ‘갔다’에 왜 물음표가 붙는지 의문이 생김. “어제 누구를 만났다?”는 의문문일까? ‘병원에 갔는데/누구를 만났는데 어떻게 됐게?’라는 뉘앙스일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칠 땐 어떻게 설명할까?
‘미룬다’는 건 ‘그곳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학교에 가긴 갈 건데, 곧장 학교로 순간이동을 할 수도 있지만 괜히 여기저기 빙 돌아서 가고 있는 거지. 학교에서 기다리는 선생님 쪽에선 답답하지만 나는 그 길에서 다른 중요한 걸 발견할 수도 있어. 그게 바로 그 그림책 내용 아닌가? 존 버닝햄 그림책 중에 학교 가다가 막 괴물 만나고 그러는 얘기...(나중에 생각남, [지각대장 존]) 지금 보니 [넉 점 반]도 그런 얘기네?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나온 동대문 중앙아시아거리 나들이)
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호선 겁나깊어... 높은계단→높은에스컬레이터→높은계단→나선형높은계단까지 올라와서야 지상에 도달함-_-
>>> ‘스타사마르칸트’라는 식당에서 오랜 고뇌 끝에 쌈사, 당근김치, ‘마스타바’라는 (알고보니)국밥을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신기한 맛이다...! 개운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필요해. 디저트 타임으로 이동!
>>> 거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러시아 케이크’로 옴. 식사+디저트에 3만 원이 넘는 거금을 태우고 있지만 해외 나가서 먹는 것보단 싼 거야-_ㅠㅋ 블린이란 게 궁금했는데 여기는 없어서 머랭롤케이크 시킴... (잠시 후) 헐 대박인데?! 와 대박존맛 와... 짱이다. 미쳤다 와... 이런 케이크가 존재하다니... 포장해가서 동생 갖다주고 싶다...(덥고 시간 늦어서 포기)
무적의 글쓰기 모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김진해 교수의 ‘무적의 글쓰기’ 코너에 참여했거나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초대함. 매달 새로운 주제로 독자 글을 모집하는 칼럼이었음)
간단한 북토크(?): ‘이상하다’라고 물을 때라야 글을 쓰게 된다. 평소에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중에서 이상한 걸 찾아보기. 나는 왜 신발을 왼쪽부터 신을까? 왜 회사 구성원끼리 ‘가족’이란 말을 쓸까?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사회적·구조적인 것까지. /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놓치지 말 것. / 나를 의심해보기. 자기를 긍정하고 격려하는 게 시대적 추세지만, 글을 쓰려면 내 확신을 지워볼 필요.
뒤풀이 때 요즘 학교문화 얘기가 나왔는데 놀라움의 연속. 인간관계가 빠르게 팍팍해져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번 모임이 더 신선해 보였는지도. 어떤 잡지의 어떤 글쓰기 칼럼을 중심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30개월 동안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니! 상품 하나 없이 오직 순수하게 글쓰기가 좋아서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당일 아침까지도 아파서 못 간다고 할까 고민했는데(낯가림 때문에) 가길 잘했다. 너무 훈훈하고 즐거웠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