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단 <파작> 인터뷰
오늘은 <계간 쓰는사람>이라는 정체불명의 잡지를 만드는 창작집단 파작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직 창간호도 나오지 않은 그따위 잡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잡문노동자로 먹고살자면 때로는 내키지 않는 인터뷰도 해야 하는 법이다. 언젠가 대문호가 되면 이같은 고난의 날들도 내 평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지.
홍상수 스타일의 한적하고 외진 골목. 물어물어 찾아간 반지하 작업실에서 멤버 네 명은 역시나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세 시에 술판이 웬말이며 하나같이 어디서 주워 입은 듯한 옷차림들은 또 뭔가. 첫눈에도 몹시 한심해 보이는 인간군상이었다. 이 잔혹한 무한경쟁 시대에 이토록 후줄근한 자세라니.
멤버들: 안녕하신가. 우리는 파작이다.
김: 연락 드린 김 기자다. 뭐 하시는 분들인가.
똥머리: 술도 먹고 가끔 잡지도 만든다.
김: 팔자도 좋다. 그나저나 다들 패션이 이게 뭔가?
깔깔이: 편하면 됐지 뭐가 문젠가?
김: 잡지도 그런 식으로 만드나?
통청바지: 그렇다. (모두 웃음)
김: 벌써 볼장 다 본 것 같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똥머리: 나는 편집장 파직이다.
깔깔이: 디자인과 제작을 맡은 파쟈크다.
통청바지: 홍보와 산문을 맡은 콰작이다.
개량한복: 편집과 시를 맡은 파잔느다.
김: 별것도 아닌 잡지에 있을 건 다 있다. 그런데 닉네임들이 너무 오글거리는 거 아닌가.
파직: 오글거리면 어떤가. 나도 예전에는 오글거리는 거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요새는 뭐만 하면 오글거린다고 욕을 먹으니까 오히려 옹호하고 싶어진다.
파쟈크: 착한 척 하지 마라. 원래 오글거리잖나.
김: 그나저나 파작은 무슨 뜻인가.
파직: 파작, 하는 소리처럼 가볍게 부수고(破) 다시 짓는다(作)는 뜻이다.
김: 뭘 부수고 뭘 짓겠다는 소린가.
콰작: 이 땅의 낡은 악습을 부수고 예술로써 새 세상을 짓겠다는 소리다.
파쟈크: 지랄하고 앉았다.
파잔느: 큰일 날 소리 마라.
김: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 보인다. 큰일은 아무나 내나.
콰작: (술상을 내리치며) 지금 우리 무시하는 건가.
김: 왜 이러시냐.
파직: 얘가 지금 취해서 이런다.
김: 본론으로 들어가자. <계간 쓰는사람>은 어떤 잡지인가.
파쟈크: 놀면서 만드는 문학잡지다. 우리는 쓰면서 노는 취향이라서.
김: 연재된 글들 읽어봤다. 그런 글이 어딜 봐서 문학인가.
파직: 글로 쓴 건 다 문학이다.
김: 수준차라는 게 있잖나.
파직: 이런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뿐이다.
김: 물론 세상에는 많은 졸작들이 존재한다. 굳이 당신들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나. 안 그래도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 아닌가.
파직: 텍스트가 넘쳐나는 이유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이 많은 게 왜 문제가 되나.
김: 작가라면 남들보다 뛰어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아닌가.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건 경쟁자가 많다는 의미다.
콰작: (자다가 벌떡 일어나) 그런 신자유주의적 태도가 문학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김: 그쪽도 만만찮게 병든 것 같다.
파잔느: 같이 놀 친구들이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김: 이분은 유치원에서 오셨나.
파잔느: 우리한테 뭐 화난 거 있나.
김: 화가 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들처럼 한가하게 놀면서 살 수가 없다.
콰작: 그러니까 새 세상을 지어야 한다는 거다.
파쟈크: 또 시작이다. 작작 좀 해라.
김: 어디 들어나 보자. 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가.
콰작: 노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파쟈크: 꿈도 크다. 우리는 그냥 밥버러지 소리 들으면서 이렇게 살다 죽을 수밖에 없다. 이왕 욕 먹을 거면 인생 즐기기라도 하면서 욕 먹고 싶을 뿐이다.
김: 놀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누가 일을 하겠나. 노동은 숭고한 거다.
콰작: 어차피 일자리도 모자라잖나. 숭고한 건 노동하는 사람이지 노동 자체가 아니다.
김: 말만 거창하면 단가. 구체적인 대안이 있나.
콰작: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나.
파직: 지금 청문회 하나. 우리는 그냥 허접한 잡지나 만드는 문학떨거지들일 뿐이다.
김: 화제를 조금 돌려보겠다. 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파직: 모대학 문창과 동기들이다. 과에서 우리가 F4였다.
파쟈크: F가 많아서 F4였다.
김: 그랬을 것 같다.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는데 다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나.
파직: 정신차려 보니 프리터족이 되어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먹고산다.
파잔느: 다행히도 글쓰기는 가장 돈 안 드는 예술이다. 큰병에 걸리거나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도 없다, 아직은.
김: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파직: 일단은 창간호를 인쇄하는 게 목표다. 그 다음은 2호, 그 다음은 3호……
김: 평생 이러고 살 거란 말인가.
파쟈크: 그러고 싶어도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어쨌든 명색이 계간인데 네 계절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
콰작: 겨우 1년인가. 넌 도대체 끈기가 없어서 탈이다.
파잔느: 너희들은 맨날 싸워서 탈이다.
김: 진정들 하고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는 게 좋겠다. 시간이 늦었다.
파직: 아직 초저녁이다. 술이나 먹다 가라.
김: 노땡큐다. 나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파직: 주소나 좀 알려달라. 잡지 나오면 보내주겠다.
김: 번거롭게 뭘. 괜찮다, 됐다.
파직: 아이, 알려달라.
김: 내가 번거롭단 소리다. 미안하다.
반지하 작업실에서 나오자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지만 오히려 암흑에서 탈출한 것만 같은 후련함이 느껴졌다. 산동네 옥탑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며 녹음파일을 듣는 동안, 저 아래 보이는 세상 구석구석에 파작 멤버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에게도 앞으로의 계획 따위가 가능할 것인가. 나는 파직, 콰작, 파쟈크, 파잔느 네 사람의 한심한 몰골을 차례로 떠올리며 연민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텀블벅에 가입하여 현재 최저임금인 5580원을 후원하기까지 했다.
인터뷰, 글_ 프리랜서 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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