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프롤로그만 올려놓고 보름이 넘도록 첫 연재를 못 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내 인생 자체가 ‘쓸럼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잡지 작업이 겹쳐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구차한 변명따위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내가 뭐 언제는 안 구차했나 싶기도 하고 이 횡설수설하는 문장조차 내 심리상태를 잘 나타내는 것만 같아 고치고 싶지 않은 시추에이션이랄까.
어떤 작가들은 매일 연재도 하던데……. 그런 지치지 않는 생산성이 부럽고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키지도 못할 매주 연재를 애초에 왜 약속했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기적으로 마감을 앓은 덕분에 1년간 50편 가까운 글을 써냈고 이제 두 번째 잡지를 출간했다는 거.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허황된 약속을 하고 60% 정도만 지키는 인생을 살아보련다.
슬럼프와 우울은 변변찮은 1인잡지의 앞표지 뒤표지와도 같은 동전의 양면일까? 쓰지 못하고 있을 때는 대체로 우울하다. 게다가 요즘은 시국까지 우울하다. 세월호 때에 이어 또다시 거리로 나가야만 했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는 잡지 인쇄 예정일 이틀 전에 열렸다. 디자인은 거의 시작도 안 한 수준이었으나 그 와중에도 나는 광화문에 갔고…… 엉뚱하게도,
스카에 빠졌다.
사실 음악을 잘 듣는 편은 아니다. 나는 책이든 영상이든 끊임없이 눈앞에 뭐가 있어야 하는 인간이므로,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하는 것 자체가 약간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청력도 별로다.
그러나 때로 삶에도 BGM이란 게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주로 발라드를, 아주 드물게는 락이나 하드코어를 듣는다. 슬프거나 격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다. 고딩 때는 자습실 구석에서 이어폰으로 서태지 솔로앨범을 들으며 혼자 헤드뱅잉을 했던 끔찍한 흑역사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밝고 신나는 음악을 선호하지 않았다. ‘흔들어주세요’나 ‘압구정날라리’보다는 ‘순정마초’를 좋아하는 취향이었달까. 그런 내가 이승환도, 크라잉넛도, 전범선과 양반들도 아닌 스카웨이커스에 빠지다니! 그것도 박근혜 하야라는 중차대한 목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집회에도 우주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보다 이 땅의 평화를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이 싸움에 나선다네
우리는 누구보다 평등한 자유를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가장 앞장서서 싸운다네
우리의 노래가 우리의 몸짓이 우리의 신명이
우리들의 무기라네
- 스카웨이커스, (Music Is Our) Weapon
스카는 그야말로 상쾌한 음악이었다. 언제부턴가 ‘상쾌’라는 단어에 꽂힌 나는, 상쾌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상쾌하게 성큼성큼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쾌한 글이란 게 대체 뭔지는 나도 잘 설명을 못하겠지만 이 앨범 <Riddim Of Revolt>를 들어보면 힌트가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며 도림천을 산책했고, 길 걷다 춤추고 싶은 걸 애써 참았고, 시즌2 작업을 마침내 끝냈고, 지금은 시즌3 첫 연재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 탑5에 드는 2014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스카가 있었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해운대 밤바다를 배경으로 킹스턴루디스카의 야외공연을 보던 그때. 애기 업은 엄마도 춤을 추고 외국인들도 다 같이 어울려 기차놀이를 하고 신나는 노랫소리 너머로 파도가 철썩이고 가을바람이 불고 하늘엔 달이 떠 있고……. 소심한 나는 계단석에서 구경만 했지만, 보기만 해도 낭만이 충만한 광경이었다. 그때 문득 ‘재밌게 살고 싶다, 어떻게 재밌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 브런치 연재와 <계간 쓰는사람>도 그 생각의 연장이다.
재밌는 일인데도 왜 슬럼프가 오냐고 묻는다면 글쎄.
재밌는 일이라고 항상 재밌으라는 법 있나? 사랑하는 사람과도 싸울 때가 있고 서먹할 때가 있는데 글쓰기라고 다를까. 글쓰기 역시 사랑하지만 때때로 속 썩이는 애물단지 가족일 뿐이다. 가끔 스카 같은 새 친구가 생기면 갑자기 새삼스레 다정해질 수도 있는.
그러면 다음에 올 슬럼프는 과연 어떤 식으로 탈출하게 될까? 태평하게 이런 기대까지 하고 앉았을 만큼,
나는 이미 슬럼프에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