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박근예

[탄핵 기념 픽션]

by 이제


‘박근예를 구속하라!’


최 편집장은 소스라쳐 일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너무나도 길고 생생한 악몽이었다. 오방낭을 배경으로 한 대통령 취임식, 편집자로서 견딜 수 없는 숱한 비문들, 대형 여객선의 침몰, 대통령의 헛소리, 막장으로 치닫는 나라꼴, 헬조선, 최손실, 국정농단, 새구리당, 촛불집회, 탄핵, 함성……


꿈이어서 다행이었지만 뒷맛은 끔찍했다. 악몽의 여운에서 깨어나려 고개를 흔들었으나 한번 돋은 소름은 가라앉지 않았다. 온 우주의 기운이 보내준 예지몽인 모양이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이 한번 빨아들였다. 꿈속에서 담뱃값이 두 배로 올랐던 기억이 났다.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선명하게 울리던 이름도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박근예? 박근예가 누구였더라.’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 읽다 잠든 원고 뭉치에 침이 흘러 있었다. 한 에세이스트 지망생이 투고한 원고였다. 글쓴이의 이름은……


박근예.


머리칼이 쭈뼛했다. 글이 너무 정신 사나워서 이런 꿈을 꿨나? 설마 진짜 예지몽인가? 이 사람이 언젠가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말인가?


그는 원고 겉표지에 적힌 주소로 당장 메일을 보냈다.


[호구출판 최순식 편집장입니다. 원고 잘 읽었습니다. 한번 뵙고 상의하죠.]




“편집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따위 원고를 출간하자니요.”


“내 사비라도 보탤 테니 좀 냅시다. 이 사람 작가 못 만들면 큰일 난다니까. 나라 생각해서 하는 얘기야.”


회의 자리에서 예지몽 운운하는 최 편집장을 보며 직원들은 대놓고 귀를 파고, 한숨을 쉬고, 낙서를 했다. 특히 편집부 이 대리는 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따박따박 따지고 들었다.


“이 사람, 안 돼요. 딱 보면 아시잖아요, 필력도 없고 개성도 없는 거.”


“어제 직접 만나봤는데, 안 그래도 슬럼프에 빠졌더라고. 뭐라는 줄 알아? ‘아무래도 전 글재주가 없나봐요. 이러려고 글쓰나 자괴감도 들고…… 이 책도 잘 안 되면 정치나 해볼까 싶네요.’ 그 소리 듣고 등골이 오싹하더라니까. 생각을 해봐. 이 사람이 글을 쓰는 게 낫겠어, 정치를 하는 게 낫겠어?”


“아니, 정치는 아무나 해요? 주어 서술어도 못 맞추는 사람이 어떻게 정책을 내고 선거운동을 해요.”


“말했잖아, 그 상태로 대통령까지 됐다고.”


“꿈이니까 그렇죠. 뭐 그런 걸 다 믿으세요? 정 꺼림칙하면 굿이라도 한판 하시든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문장이야 편집부에서 뜯어고치면 될 거 아니야. 내가 다 할게. 내가 괜히 편집장인가. 나 글 고치는 거 좋아해. 내가 대필작가 수준으로 고쳐준다니까.”


“아휴, 마음대로 하세요. 판권에서 제 이름은 빼주시고요. 나라 망하기 전에 우리 회사부터 망할 판이네. 송 부장님, 들으셨죠? 편집장님이 사비 보탠다고 하셨으니까 꼭 청구하세요.”


이 대리는 회의 자료를 착착 챙기더니 훌쩍 나가버렸다. 흔들리는 문짝을 바라보며 최 편집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자식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장 아들인데……’




우여곡절 끝에 박근예의 에세이집 『내 정신의 여정』은 호구출판 사장 아들 최 편집장의 사비로 출간되었다. 그의 희생적인 애국심과 혼신을 다한 리라이팅, 박근예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덕택인지 책은 기적적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10쇄를 찍던 날, 최 편집장은 박근예를 만나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합니다. 책이 아주 불티나게 팔리네요.”


“대전은요?”


“네??? 아 예…… 대전에서도 많이 팔렸죠……”


“감사합니다. 다 편집장님 덕분이라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편집장님은 아마도 저를 배신하지 않으시겠다, 믿어도 되겠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습니다. 앞으로 편집장님이 시키시는 일이면 뭐든지 하겠다라는 각오로……”


“……작가님은 그저 글만 열심히 쓰세요. 절대 딴생각 하면 안 됩니다. 작가님은 작가가 천직이에요.”


“그럼요. 물론 쓰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열정이 어디에서 생기느냐면 요새는 어쩐지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포부가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그랬다. 박근예의 내면의 목소리는 그녀를 끊임없는 방랑의 길로 부추긴 것이다. 최 편집장은 또다시 옛 악몽을 떠올렸다. 시도 때도 없이 해외 순방만 다니던 대통령 박근예의 웃는 모습을……


그것만은 안 된다. 절대 안 돼. 그는 박근예에게 취재비를 빙자한 여행비를 두둑이 챙겨 주며 여행에세이를 써보라고 권했다.


얼마 뒤 그녀는 한 손에 여행수첩을 들고 활짝 웃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요즘도 여행작가 박근예는 칩거와 여행과 드라마 정주행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비문 가득한 글을 써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여행 셀카를 올리기 위해 패션과 미용에도 꽤나 신경을 쓰는 눈치다. 대화를 싫어하고 혼밥과 방콕과 침묵과 메모를 즐기는 그녀에게는 작가가 딱이었다. 글재주는 없지만 다행히도 영혼의 단짝 최 편집장이 있지 않은가. 때로 슬럼프가 올 때면, 글쓰기 따위 때려치우고 정치나 해볼까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을 때면, 최 편집장은 어떻게든 글쓰기의 즐거움을 되살려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곤 한다.


그 악몽이 꿈으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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