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필의원 이돌팔 원장 인터뷰
<인간 희극>의 작가 발자크는 매일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며 열다섯 시간씩 작업하여 방대한 양의 작품을 써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토록 몸을 혹사시킨 탓에 쉰을 갓 넘긴 나이로 죽고 말았지만, 그의 왕성한 작품활동은 슬럼프에 빠진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에 인터뷰한 이돌팔 원장 역시 한때 소설을 썼다. 본과 1학년 시절, 수강신청 실패로 우연히 ―또는 운명적으로― 소설 창작 강의를 신청한 것이다. 강의 특성상 자연계 학생이 드물었고 더구나 의대생은 그가 최초였다. 경험을 살려 쓴 첫 단편 <해부실습실의 체온과 기온>이 뜻밖의 호평을 받자 그는 남몰래 작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숨 돌릴 틈 없는 의대 생활은 그에게 창작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훗날 개인병원을 차린 뒤 다시 집필을 시도했으나, 젊은 시절의 감수성은 첩첩이 쌓인 의학 지식에 짓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주말마다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자신의 전공지식을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작가의 슬럼프를 치료할 주사제 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3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된 ‘발자크의 커피’(이하 ‘커피주사’). 블랙커피처럼 검디검은 이 링거 한 병이면, 아무리 슬럼프가 심했던 사람도 쭉쭉 글을 뽑아낸다고 한다.
인터뷰 사전 준비를 위해 병원 아래층 카페에 들어서자 독특한 열기가 느껴졌다. 종업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노트에 뭔가 휘갈기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한 20대 여성이 카페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오더니, 본 기자 옆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기자 된 처지에 인터뷰 한번 안 따볼 수 없었다.
실례한다. <월간 쓸럼프> 김 기자다. 질문 몇 가지 해도 될까.
안 된다. 쓸 게 많다.
5분이면 된다.
그녀는 내 말을 가볍게 씹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얼핏 봤더니 뜻밖에도 자기소개서였다. 5000자 자소서로 악명이 높은 무휴기획 지원자인 모양이었다. 하긴 글 안 써져서 고민하는 게 어디 작가들뿐이랴.
다른 인터뷰이를 찾아 주위를 살피던 중, 놀라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절필 선언과 함께 잠적했던 소문호 작가가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쪽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 카페 주인이었다.
기자신가 본데 여기 손님들은 아무도 인터뷰 안 해줄 거다.
이유가 뭔가.
다들 속필의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다. 커피주산지 뭔지 그놈의 거 맞고 나면 영감이 막 쏟아진다더라.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아까워 우리 카페에 주저앉는 거다. 24시간 카페인데 24시간 내내 잠도 안 자고 쓰는 사람도 있다.
혹시 마약인가.
안 맞아봐서 모르겠다.
카운터 옆에는 병원답지 않게 책 광고 입간판이 서 있었다. 책 제목은 <검은 피가 당신을 움직인다>(이하 <검은 피>), 이돌팔 원장이 직접 쓴 책이라고 한다. 곧이어 만나본 이 원장은 흰 가운에 어울리지 않는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름 작가 컨셉인 모양이었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파란 피 운운하던 통신사 광고에 착안했다.
언젯적 얘긴가.
(무시) 검은 활자를 끊임없이 뽑아내는 작가는 검은 피가 흐르는 자나 마찬가지다. 커피주사를 맞으면 실제로 핏빛이 약간 검어진다. 체했을 때 손 따면 그런 것처럼.
유치뽕짝이다. 그나저나 주사제로 슬럼프를 치료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과학이란 원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불법적 성분이 포함된 건 아닌가. 환각제라든지.
절대로 아니다. 커피주사는 몸에 좋은 유기농 생약성분으로만 만들어졌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는가.
작가나 작가지망생이 많지만, 논문 쓰는 연구자나 자소서 쓰는 취업준비생, 시나리오 쓰는 감독, 연설문 쓰는 비서관, 파워블로거, 댓글알바 등등 굉장히 다방면에서 찾아온다.
본인도 주사를 직접 맞아봤나.
개발 초기에 약효도 점검할 겸 맞아봤는데 계속 글만 쓰게 되어 병원 일에 전념할 수가 없더라. 그래도 그때 <검은 피>를 써서 병원 홍보에 큰 도움이 됐다.
한때는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하던데.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시야가 좁았다. 세상에는 문학 아닌 책도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
소문호 작가.
아래층 카페에서 봤다. 소 작가는 3년 전 절필 선언을 하지 않았나.
슬럼프가 심해서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더라. 가족이 뜯어말려 절필 발표하고 유학을 간 거다. 커피주사가 개발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곧 신작이 나올 것이다. 의사로서 한 인생을 살렸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소 작가는 운이 좋았다. 평생 책 한 권만 남기고 죽은 작가들도 있지 않나. 그들도 우리 약을 썼다면 스티븐 킹만큼 많은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을 거다. 안타까운 일이다.
커피주사가 글의 양뿐 아니라 질까지도 담보하는가.
많이 쓰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
작가라면 정말 솔깃하겠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높은 생산성을 가지게 된다면…… 글쎄, 그런 게 과연 바람직할까.
왜, 문제 있나.
예를 들어 종이 낭비가 심해질 수도 있고……
E-Book 시대에 무슨 소린가.
평생 한 권만 쓴 작가들 인생도 그런대로 낭만적이지 않나. 일곱 단어 가지고 하루 종일 고민한 조이스 같은 작가도 있고.
그런 날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율리시스>가 얼마나 두꺼운지 잊었나. 기자님이 매일 일곱 단어씩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렇게 살고 싶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그것 봐라. 누구나 빨리, 많이,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한다. 신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건강한 몸, 팔팔한 컨디션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의사 아닌가.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모든 사람을 글쓰기 기계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만 도와준다.
찾아오는 사람 중에 돈을 내는 사람 아닌가.
그거나 그거나.
가격이 얼마나 되나. 나도 한번 맞아볼 수 있는가.
원래는 100만 원인데 기자님은 특별히 감사 특가 70만 원에 해드리겠다. 기사 좀 잘 부탁드린다.
할부도 되나.
12개월까지 가능하다.
나는 결국 70만 원이라는 거금을 결제하지 못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망설인 이유는 가격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빨리, 많이,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한다’는 단언에 이유 모를 반감이 들었던 것이다. 카페에서 휘몰아치듯 글을 쓰던 사람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나는 정말 그런 모습이고 싶은 것일까. 나는 늘 그랬듯 게으르게, 산만하게, 딴짓을 해가며 이 기사를 써냈다. 이래서 나는 여태 루저인 것일까.
글_ 프리랜서 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