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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07. 2017

의식의 흐름 스타일


그저께 밤에 야식으로 먹은 약식 세 조각이 잘못되었는지 어제부터 슬슬 속이 안 좋더니 급기야 약까지 토하기에 이르렀다. 아아 비루한 육신 같으니…… 벌써부터 이렇게 소화력이 떨어지면 남은 여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잠들기 전 두 시간 이내에는 절대 아무것도 먹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때늦은 다짐을 해본다.


오심과 구역, 두통으로 잠이 안 오는 새벽 네 시, 폰으로 요리블로그를 구경했다. 블로거의 필력이 굉장했다.


‘딸기는 내일 아침에 올릴 것이지만, 내일의 저를 위해 미리 잘라두어야 합니다. 일종의 하루라도 더 산 어른을 공경하는 시스템입니다.’ (입금완료, [살찌기 교실-26] 커스터드크림 딸기 타르트 만들기)


천재다…… 이 사람 천재야…… 오심과 구역, 두통에 부러움으로 인한 복통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이미 졌으니까 부러운 거 아닌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병중에 있는 내 상태를 감안해주기 바란다.


부러운 나머지 비루한 육신을 이끌고 의자에 기어올라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부러운’과 ‘비루한’의 은근한 라임이 마음에 드는 가운데, 나도 저 블로거의 의식의 흐름 스타일에 전염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솟는다. 이번만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면 묘하게 내 글도 영향 받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나만의 주체적인 문체를 확립하지 못한 것일까라는 때아닌 고민을 해보는 새벽이다. 하지만 완전히 독립적인 나라는 것이 존재하겠는가. 나의 모든 부분이 누군가의 영향일 뿐. 나무아미타불…… 똑똑또그르르 라고 써놓고 15년 묵은 전자사전에서 ‘나무아미타불’을 검색했다. 작가지망생의 의식의 흐름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이럭저럭 하다 보니 여섯 시가 다 됐다. 뭘 썼다고 두 시간이 흘렀냐 묻는다면 쓰는 시간보다 더 오랜 사색의 시간이 있었다고 답하겠다.


창문을 열어 보니 먼 산에 드리운 저것이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펼쳐져 있다. 완전히 날이 밝으면 세수하고 옷 입고 출근을 해야 한다. 제정신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시 반 퇴근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은 꼭 병원에 가야지. 아이고 데이고.


2017.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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