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드디어 밥이란 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온음료를 주식 삼으며 1일1죽을 실천한 지 만 엿새 만이었다. 얼마나 비참한 150시간이었던가! 걷기가 소화에 좋다고 해서 주말에도 기어나가 산책을 했지만 길가의 모든 음식점이 나를 소외시켰다. 빵집도 통닭집도 심지어 과일가게조차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감히 범접해서 2000원짜리 딸기 한 팩을 사다가 소심하게 한 개 먹고 냄새만 맡았다. 생딸기 향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아침마다 딸기향이 퍼지는 알람시계가 있다면 당장 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알람 속 인공 딸기향은 두통을 유발하는 딸기시럽 냄새겠지.
나에게 맛과 영양 대신 향기를 선물한 딸기들은 결국 곰팡이가 피어 음식물쓰레기봉지에 버려졌다. 딸기들아 미안하다아아아아앜!!!!!! 버린 음식은 지옥에서 먹어야 된다지만 딸기들은 아무 죄가 없으니 지옥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소시장이 내일모레다. 오마이갓. 이틀 전까지 아무 대책이 없다니!
과연 판매 테이블 위에 책 세 권 이외의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을까? 책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 하나쯤은 준비하고 싶다. 시간이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니까 괜찮다. 최대한 간단한 방법을 떠올려보자.
일단 시즌3의 문장완성검사를 인쇄해서 무료배포해야겠다. 투명 돼지저금통에 문장 쪽지를 모으는 건 어떨까? 설문조사 방식은 작년에 해봤으니까 또 하긴 좀 그렇고. 관람객들이 한두 줄씩 덧붙여가는 릴레이 글쓰기도 해보고 싶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건 브런치에서 해볼까?
……라는 것이 플리마켓 이틀 앞둔 작가지망생의 의식의 흐름이다.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말은 어떻게든 해내겠지, 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하니 나도 의외로 자존감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소소시장 브로셔를 보니 이런 행사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시가 쓰여 있었다. 이런 글은 대체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얼마나 책을 많이 읽어야 이렇게 완벽한 인용을 할 수 있을까.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대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 울라브 하우게,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임선기 역
소금 한 톨을 가지고 바람처럼 가야겠다.
2017.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