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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17. 2017

앞으로도 거침없이 내성적일 예정

치과 진료와 소소시장 후기

얼마 전 신경치료를 받은 막내동생의 회유와 강권―드릴로 이를 뚫는 영상을 보여주었다―으로 오늘 드디어 치과에 갔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갔을 때는 아마 2000년대였던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의 진찰은 역시 내 몸은 성한 데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랑니 발치와 연이은 신경치료로 올봄은 볼이 퉁퉁 부은 채 보낼 것 같다. 울적하고 착잡한 기분으로 서점에 가서 『82년생 김지영』을 샀다. 다 읽으면 더더욱 울적하고 착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토요일 소소시장은 무사히 마쳤다. 책도 좀 팔렸고, 작년 서울독립출판축제 제작자들도 오랜만에 만났고, 우연히 시즌3 투고 작가를 만나기도 했다. 내 책을 사서 읽어봤다는 분, 계속 내 달라고 응원해주시는 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는 분도 있었다.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몹시 놀랐다. 내 책을 취급하고 홍보해주시는 독립출판서점 사장님과 그 책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


자리를 지키느라 찬찬히 둘러보진 못했지만 쓱 보기에도 예쁘고 세련된 책이 많았다. 모두들 미술 전공자 같아서 나 같은 곰손은 기가 죽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이미지보다는 텍스트 중심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약간 아쉽기도 하다. 『독립출판 1인5역』, 『-philic』, 『여기서 우릴 만난 건 비밀』을 샀다. 4월 7일 일기에서 천재라고 극찬했던 블로거가 사진집 작가로 소소에 나왔다. 책 사고 사인도 받고 싶었지만 쑥쓰러워서 응원 한마디 겨우 던지고 도망쳤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내성적이고, 내성적이라는 데 딱히 불만도 없는 만큼 앞으로도 거침없이 내성적일 예정인데, 이런 행사에 나가면 내가 나 같지 않은 느낌이다. 찬란한 햇빛과 건강하기 짝이 없는 파란 풍선들 사이에서 크리에이터 목걸이를 걸고 작품 설명(?) 같은 걸 하고 있다니!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넘나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p.s. 행사가 끝난 뒤, 연합뉴스 사진을 보고 내 볼은 굳이 사랑니를 뽑지 않아도 충분히 퉁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간식으로 바나나 먹을 때 찍힐 건 뭔가! 난 어째서 주변의 카메라에 유의하지 않았던가! (제발 검색해보지는 말길 바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잘 뵈지는 않는다)


2017.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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