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출근 2시반 퇴근이라는 널널하기 짝이 없는 알바생활을 하던 중, 덜컥 전일제 근무 제의를 받았다. 남은 한 해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는 초고난도의 문제였다. 시간이냐 시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후가 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1. 보험회사에서 8시부터 2시까지 일했던 카프카와 근무시간이 비슷하다는 쓸데없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더더욱 쓸데없는 소리지만 내 생일은 카프카와 딱 100년 1개월 차이가 난다.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에, 나는 1983년 8월 3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써놓고 보니 나 자신이 몹시 찌질하게 느껴진다.
2. 남들 다 일하는 낮 시간에 세기의 걸작을 집필하거나, 책을 읽어 학식과 교양을 쌓거나, 사람 없을 때 전시회를 보며 작품과 일대일로 교감하거나, 자연 속으로 소풍을 다니며 시상을 떠올리거나, 운동을 해서 만병을 고치거나, 프리랜서 경력을 쌓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3. 퇴근해서 집에 가면 하루가 끝나는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월수입이 수십만 원쯤 늘어나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다음 중 택2)
1. 부모님께 가끔 용돈을 드릴 수 있다. 이게 1번인 이유는 엄마가 이 일기를 읽기 때문이다. 못난 자식 입효도라도 해야지.
2. 보증금을 모아 지금보다 약간 넓은 옥탑방으로 이사할 수 있다. 그러나 내집마련은 고사하고 월세탈출조차 이번 생에는 어려울 것 같다.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잘 풀리면 40대쯤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3. 혹시 내년에 재취업에 실패해도 몇 달쯤은 버틸 수 있다. 내년 5월 이후에 이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생활비가 소진된 것이다. 내 목숨은 소진되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다.
4. 싼 옷이 아니라 어울리고 입을 만한 옷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나의 패션감각은 인간의 꼬리뼈 수준으로 퇴화했으므로 옷값을 더 들인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지도 모른다.
이상의 모든 사항을 닷새 동안 심도 깊게 고려한 뒤, 마침내 9to5 근무를 결정했다. 이제 나도 저녁에 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평일 오후의 햇살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