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5. 19
설정의 디테일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글이 점점 산으로 가곤 한다. 요 며칠 동안 <실습보고서>의 뒷부분을 이어 쓰고 있었는데, 돌연 ‘이 학교에 입학한 영혼들은 겉모습과 감각, 물리력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문제를 놓고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
신체와 영혼의 이원론을 받아들인다면, 영혼은 겉모습도 감각도 물리력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다른 영혼들을 보거나, 연필을 잡고 글을 쓰거나, 학교 강당에 줄을 설 수도 없는 거 아닐까?
한편 몸을 이승에 두고 온 영혼들에게 모습과 감각과 물리력이 있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영혼에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죽을 때 그대로의 모습? 그러면 불의의 사고로 처참하게 죽은 영혼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러면 죽기 전 가장 멀쩡했던 모습? 멀쩡의 기준은 또 뭐냔 말이다. ……정말 별 싸이코 같은 고민을 다 한다.
만일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아, 내게는 그럴 만한 철학적 사유 능력이 없다.
<잉여백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지문처럼 짧은 글을 쓸 때는 이런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종의 시적 허용, 아니 병맛적 허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글이 길어지면 단순무식했던 설정은 가볍게 찢어져버린다.
대담한 예술가, 예를 들어 마르케스 같은 작가라면 이딴 고민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긴 종이를 꼬아 붙여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듯, 아주 우아하고도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현실과 비현실, 논리와 비논리를 맞붙일 것이다. (마르케스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진 못한다. 그냥 어쩐지 그래 보인다)
비교적 현실 그대로를 그리는 리얼리즘 작가 역시 이딴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영혼의 겉모습이나 저승의 학교 따위는 묘사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만일 묘사한다면 어디까지나, 영혼이나 저승을 상상하는 ‘현실 속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한심한 인간을.
하지만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그냥 리얼리즘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고, 나도 내 나름의 스타일로 풀어나가면 되는 건데, 사실 이런 게 가장 즐거운 고민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지금은 고민중이라는 얘기다.
땅바닥에 까치발로 서서 고개만 간신히 구름 위로 내밀고 있는 것 같다. 땅에서는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구름 위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하며 놀아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