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매밖에 안 되지만 스크롤 압박 주의
미라가 일곱 번째 공무원시험을 마치고 노량진의 자취방에 돌아갔을 때, 문 앞에는 넓적한 상자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4인용 식탁 상판만 한 종이 상자였다. 뭐야, 이건. 미라는 겉면에 쓰인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다. 받는 사람은 본인이 확실했지만 보낸 사람 이름은 없었다. 귀퉁이에는 주소보다 더 크게 <취급 주의>라는 빨간 매직 글씨가 쓰여 있었다.
미라는 조심조심 상자를 끌고 방에 들어섰다. 쥐구멍 하나 없는 밀폐된 방이었다. 책꽂이 딸린 책상과 소형 옷장, 늘 깔려 있는 이불이 바닥면적 대부분을 차지했다. 오늘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이곳에서의 4년은 마침내 끝날 수도, 더 연장될 수도 있었다. 미라는 책상 위의 알루미늄 바구니를 헤집어 간신히 커터칼을 찾아내서는 상자를 봉한 노란 테이프를 갈랐다.
그 안에 든 것은 창문이었다. 폭 1미터에 높이 80센티미터 정도의 미닫이 창으로, 검은색 플라스틱 창틀에 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어리둥절해진 미라는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도 곧 난감한 표정으로 그 창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창문을 무심코 여닫으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했다. 누가 보냈을까. 어쩌라는 걸까.
“야, 너무 탁 닫지 마. 옆방에 다 들려.”
“뭐 어때. 옆방 사람도 오늘 시험 봤을 거 아냐. 하루쯤은 놀겠지.”
“쟨 다른 시험일걸.”
미라는 커다란 창문과 포장 상자에 밀려 책상 밑에 처박히다시피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은 채였다. 뽁뽁이를 잔뜩 말아쥐고 있었지만 시끄러울까봐 터뜨리지도 못했다. 방바닥을 온통 차지한 창문은 뻔뻔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창문 없는 방에 창문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집의 구조를 점검해서 창문을 만들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허가가 떨어지면 적당한 크기로 벽을 뚫고 창틀을 설치한다. 벽과 창틀 사이를 모르타르로 꼼꼼히 메우고 창문을 끼운다. 창문 주변에 벽지를 새로 발라 마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공정을 세세히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돈을 주고 기술자에게 맡기면 며칠이 안 되어 공사를 끝내 줄 테니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또 하나. 다 쓰러져가는 집에 찢어지게 가난한 대가족이나 소녀가장이 살고 있을 경우에 사용 가능한 방법이다. 어려운 이웃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봉사단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따위에 절절한 사연을 보내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방마다 적어도 창문이 하나 이상씩은 있는 집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홍보 팸플릿에 실을 감사 사연을 쓰는 정도의 수고는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라는 보증금 300에 월세 25만원짜리 자취생일 뿐이다. 창문이 하나인 방을 둘로 갈라 방 두 개를 만든 집주인은 창문 있는 방을 월 30만 원, 창문 없는 방을 월 25만 원에 내놓았다. 그나마 이 집주인은 양심적인 편이다. 어떤 집주인은 미닫이 창문 가운데에 벽을 쳐서 두 방이 창문을 공유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한쪽 방에서 드르륵 창문을 열면 옆방 창문은 드르륵 닫히는 것이다. 이 바닥이 이 지경이므로,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고는 미라의 방에 창문이 생겨날 수 없다.
만일 미라의 인생에 단 한 번의 기적이 허락된다면, 미라는 결코 창문 따위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라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하나의 기적은 오직 합격뿐이었다. 국가가 미라의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그 순간에야 미라는 좁아터진 씨앗을 뚫고 솟아나 한 떨기 꽃이 될 것이었다. 동사무소 화단에 핀 보라색 팬지 같은 것 말이다.
“어떡하지. 그냥 버릴까?”
미라는 창틀을 스르륵 열더니 그 아래 이불에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떼냈다.
머리카락.
창밖의 머리카락.
창밖으로 풀썩, 날리던 긴 머리채가 떠오르는 순간 나는 창문을 탁 닫아 버렸다. 깜짝 놀란 미라가 한 손을 아래쪽으로 마구 흔들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10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창가 맨 뒷자리에 앉은 L은 항상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교실 창문은 오래된 알루미늄 섀시였다. 여닫을 때 쇳소리가 심하게 나서, 한번 열면 좀처럼 닫지 않고 한번 닫으면 좀처럼 열지 않았다. 5층 교실이라 멀리 공원과 주택가가 펼쳐지는 전망이 제법 시원스럽긴 했지만, L은 좀 심한 편이었다.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창밖만 내다보았으니까. 선생들이 그 꼴 보기를 싫어한 건 당연했다. 보다못한 담임은 그애의 자리를 복도 쪽 뒤에서 두 번째 자리로 옮겼다. 바로 내 앞자리였다.
그 후에도 L은 여전히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은 좀 멀어졌을 뿐, 없어진 건 아니었으므로.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교실 뒤를 가로질러 창가로 다가갔다. 이제 반 아이들도 그 꼴을 보기 싫어하게 되었다. 재수없다, 미친 거 아니냐, 따위의 말들이 L 뒤에서 술렁였다.
어느 날 나는 L에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봐? 밖에 뭐가 있길래?”
L은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L에게도 목소리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L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넌 바깥이란 게 있다고 믿니?”
나는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깥이지 뭐야.”
“교문 하나 넘는다고 바깥이 되나? 여기든 저기든 똑같은 세상인데.”
“그 생각 하면서 맨날 이러고 있는 거야? 별것도 아니네.”
그러자 L이 다시 한 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보자 가슴이 뜨끔했지만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L의 우울증은 그저 흔한 수험 스트레스에 불과했다. 다만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왜일까. 왜 하필 창밖일까.
어느 토요일, 집으로 가는 L을 따라나섰다. 들켜도 상관없고 들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적당히 뒤처져 걷다가 적당한 시점에 L에게 발견되었다.
“너도 집이 이쪽이니?”
“아니, 너 따라가는 건데.”
“왜?”
“궁금해서.”
“뭐가.”
“네가 네 방에서도 그렇게 창밖만 쳐다보는지.”
처음으로 L은 웃었다. 골탕 먹이려는 어린애처럼 짓궂은 표정이었다. 군말없이 몸을 돌려 앞장을 섰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커다란 대문 앞에 당도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홈드레스 차려입은 ‘사모님’이 ‘어머 너는 누구니?’ 하며 맞아주면 어쩌지? ‘우리 L이랑 친하니? 친구 데려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아버지는 뭐 하시니? 어머니는 뭐 하시니?’ 괜히 따라왔나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L을 따라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집 안에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가정부나 집사가 문 앞에 대령하지도 않았다. 널찍한 거실 바닥에는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 집 안이 너무 적막하고 말끔해서 저절로 까치발이 들어졌다.
2층으로 올라가며 나는 L의 창문을 상상했다. 학교에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일 것이다. 집은 좋지만 전망은 별로일지도 모른다. 높은 담장이 창밖을 잔뜩 가리고 있거나 갑갑하게 방범용 창살이 쳐져 있는지도 모른다. 설마 방 창문이 스테인드 글라스인 건 아니겠지? 이쯤 생각했을 때, L이 문을 열었다.
맞은편에 커다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새 저녁이 된 건지, 창밖이 온통 어두컴컴한 것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L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던 것이다. 창문 대신 있는 건 창문만 한 유리 칸막이였다. 여닫을 수 없는 칸막이 너머에는 불 꺼진 서재가 있었다. L의 방보다 훨씬 넓고 한가운데에 큰 책상이 놓였다. 책상에는 각종 원서들과 인쇄물이 탑을 이루고 있었다.
“엄마 서재야. 지금은 강의를 나가서.”
“왜, 이렇게 뚫려 있어?”
“……지켜보려는 거지.”
“무섭다.”
“자극도 많이 돼. 존경할 만한 사람이야, 엄마는.”
“항상 이렇게 네 방을 들여다본다고?”
“야, 그렇게 막 스토커처럼 감시하지는 않아.”
L은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엄마도 바쁜 사람이라고. 오히려 내가 엄마를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을걸.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하고. 엄마는 그게 윈-윈 전략이래. 서로 자극받고 자극 주면서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거.”
무어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한 발 물러서서 L의 방을 둘러보았다. 흰색과 푸른색 위주로 깔끔하게 꾸며진 방이었다. 침대에 곰 인형이 누워 있었다. 옷장 손잡이에 잘 다린 교복 와이셔츠가 걸려 있었다. 벽시계의 추가 째깍째깍 흔들렸다. 이 모든 풍경이 통째로, 컴컴한 유리 칸막이에 반사되었다. 나와 L의 모습도 유령처럼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상상했다. 유리 칸막이 너머에서 L을 지켜보고 있는 그 어머니를. 지켜보지 않는 시간에는 스스로 L의 모델이 되고 있는 그 어머니를. L의 창밖을 점령하고, L로 하여금 세상에 바깥이란 게 있는지 의심하게 한, 그 서재를.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당장 그 집에서 나와.
하지만 어디로? 바깥이란 게 정말 있을까? 있다면 나갈 수 있을까? 나간다면 머물러 살 수도 있을까?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나오라는 말도 물론 하지 못했다.
곧 2학년 첫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수학 시간 감독은 우리 반 담임이었다. 모르는 문제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시험지 구석에 낙서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 하는 소리가 근처에서 났다. L 옆자리에 앉은 부반장이었다.
L이 자꾸 컨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컨닝이라고? 창밖을 컨닝했다면 모를까. 나는 픽 웃으며 활짝 열린 창문을 건너다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창밖에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시험 시간에도 하늘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봄이었다. 봄하늘은 파랗고 평화로웠다. 엷은 구름 아래로 볍씨 같은 새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아갔다. 하늘도, 새들도, 이런 창백한 교실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었다. 저런 게 바깥이구나. 바깥은 언제나 있구나. 저렇게 천연스럽게, 천 년 전에도 있었고 천 년 후에도 있겠구나. 나는 그 서늘한 허공에 압도되었다.
담임이 다가왔다. 반 아이들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물론 몇몇 의지의 모범생들은 사소한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부반장도 어느새 샤프 뒤꼭지에 턱을 댄 채 시험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정말 컨닝했니?”
L은 대답 대신 또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그 옆얼굴은 섬뜩하도록 무표정했다.
“내 말 안 들리니?”
“……”
대답이 없자 담임은 L의 시험지를 집어들었다.
“하나도 안 풀었네.”
“……”
“시험 끝나고 어머니 좀 모시고 와.”
L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면담 한번 해야겠다.”
담임은 시험지를 반으로 접어 든 채 칠판 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L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우유 상자를 계단삼아 거침없이 창턱을 밟고 바깥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아주 간단하게.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어떤 아이들은 L의 이름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야! 라고 소리쳤고, 어떤 아이들은 이름을 불렀다. L이 스쳐 지나갔을 아래층 교실들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렸다. 1층이나 2층 교실에서는 그애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렸겠지. 담임이 복도로 뛰쳐나갔고, 놀란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갔다. 교실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지의 모범생들도 이번에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컨닝.
이 와중에 누가 컨닝이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 아래에서는 L이 박살나 피가 튀고 있는데, 이런 순간에 컨닝 따위의 단어를 떠올린 나는…… 어쩌다가 생겨난 괴물일까. 나는 나 자신을 저 창밖에 내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내던짐은 L의 탈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일 것이었다. 나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실제로 컨닝을 하는 아이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만일 그때 L의 죽음을 틈타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인간이 실제로 있었다면, 순간 이 세상은 멸망했을 것이다. 아니, 늘 그래왔듯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세상은 그런 식으로 수없이 멸망해 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 후에 실린 지역신문의 토막기사에는 L의 사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학업 부담으로 우울증을 앓던 여고생 이모 양이 시험 중에 투신자살을 했다고. 이렇게 심플할 수가. L의 죽음은 흔하고 뻔한 죽음이었다. 수많은 창문들이 L과 같은 아이들의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며칠간의 소동이 가라앉고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되었다.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맞대고 무슨 이야긴가를 하고 있었다. 담임에게 고자질을 했던 부반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수학 점수 잘 나왔니?”
“그건 왜.”
“걔가 뛰어내린 게 시험 끝나기 10분 전이었잖아. 내가 확실히 시계를 봤거든.”
“그랬나?”
“그래서 우리 반 애들이 손해를 봤단 말이야. 넌 바로 뒷자리라서 더 놀랐겠다. 수학 시험이라도 다시 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애들이 얘기하고 있어. 걘 어떻게 죽으면서까지 민폐를 끼치니.”
나는 그대로 일어서서 교실을 나왔다. 교실 뒷문을 나서고, 1층 현관을 나서고, 교문을 나서서 L이 늘 내다보던 가짜 바깥 속으로 걸어갔다. 창문이 아닌 문으로, 살아서 바깥에 나가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거창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 후로 10년이 흘렀다.
시시한 10년이었다. 고작 며칠 정도의 결석 끝에 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한 달여 만에 다시 교과서와 문제집을 잡았고, 입시미술 전문 학원에 등록했고, 미대에 진학했다. L이 아니었다면 미술을 전공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L이 사라진, 캔버스처럼 반듯하고 냉정한 사각의 창문을 잊을 수 없었다. 풀썩, 긴 머리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파란 하늘밖에는 보이지 않던 그 공백. 거기에 나는 무언가를 채우고 싶었다. 여기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세계를. 하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내가 주로 그려야 했던 것은 L이나 바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실기시험 과제나 학습지의 삽화 따위였다.
결국 나는 바깥에 나가보지 못했다. 어딜 가나 L의 부모가 있었고 어딜 가나 부반장이 있었다. 어딜 가나, 비명을 지르던, 창가로 우르르 몰려가던, 그제야 L의 이름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던, 수학 시험을 다시 보고 싶어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미라 역시 그들과 같을까. 대학 시절 토익 학원에서 만난 미라는 나조차도 ‘바깥의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수년 전 졸업전시회에 장미 한 송이를 사 들고 와서는 주눅 든 목소리로 속삭이던 말. ‘여기는 완전히 딴세상이네.’ 우스운 일이었다.
“이거 진짜 어떡하냐. 아무래도 갖다 버려야겠지?”
미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한참이나 창틀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까짓거, 창문, 만들어보지 뭐.”
“창문을 만들다니?”
“벽에 붙이자. 액자처럼. 그러고 보니 액자 같기도 하네. 괜찮은데?”
“장난해?”
“재밌잖아. 너 오늘 시험 봤으니까 하루는 놀아도 되지?”
노량진역 앞 큰길로 나오니 인도에도 육교에도 커다란 백팩을 멘 수험생들로 가득했다. 육중한 학원 건물들이 차도를 에워싸고 있었다. 왠지 그 어딘가에 부반장이 앉아 있을 것 같았다. 그때보다 조금 나이가 든 채로, 그때처럼 샤프 뒤꼭지에 턱을 댄 채 시험지를 응시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미라를 끌고 문구점에 들어가 도화지 몇 장과 수채물감과 붓과 팔레트를 샀다.
“야, 물통도 살까?”
“이게 다 뭐야, 유치하게. 됐어, 생수병 자르면 돼.”
미라의 방에서 우리는 이불을 둘둘 말아 책상 밑에 구겨넣고, 사방에 널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고, 신문지를 깔고 도화지를 폈다.
흰 종이를 눈앞에 두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그려야 할 창밖의 풍경. 미라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내 손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려야 하나. 뭘 그리고 싶은가. 미라의 창밖에는 어떤 풍경이 필요할까.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풀썩 날리던 머리칼과 텅 빈 하늘뿐이었다. 우르르 몰려가던 아이들, 비명소리, 고함소리. 나는 붓을 놓았다.
“못 그리겠어.”
“못 그리다니? 그냥 아무거나 그려봐.”
“그냥, 네가 해라. 네 방 창문이니까 네 마음대로 그려.”
미라는 조금 실망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파란 물감을 잔뜩 짰다. 그리고 제일 큰 붓으로 물을 뚝뚝 떨어뜨려 섞고는 시원시원하게 색칠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하늘, 하늘이라니. 하지만 미라는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파란 하늘이란 가장 흔하고 뻔한 풍경 아닌가.
“이거 재밌네. 고딩 때 이후로 붓 처음 잡아봐. 아까만 해도 사인펜 들고 답안지 마킹하고 있었는데.”
미라가 칠한 파란 하늘이 다 마르자, 나는 그 위에 가는 펜으로 볍씨 같은 새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미라는 꼭 파리 같다며 또 한 번 실망했다. 나는 그림을 붙인 유리창을 벽에 매달아 고정시켰다.
“야, 여기다 못을 박으면 어떡해.”
“나중에 알아서 뽑아. 장도리 있잖아.”
“이래 놓으니까 진짜 액자 같네. 작품 제목은?”
“이걸로 하지 뭐.”
나는 구석에 처박힌 포장 상자에서 <취급 주의> 네 글자를 대충 오려 창문 아래에 붙였다. 이 창문이 우리에게 즐거운 놀잇감이 된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다음 날 아침, 미라는 학원 게시판에 나붙은 정답표를 보고 가채점을 했다. 예상 합격선에서 3점이나 모자랐다. 곧바로 자습실에 들어가 다음 시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익숙해져야만 했다. 스물여덟 살에 미라는 이미, 공부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므로. 미라는 시험 시간에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머리를 박박 깎고 덩치가 컸던 그 사람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책상에 엎어져 어깨를 들썩였었다. 그 사람은 붙었을까?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온 사십대 여자, 단권화 자료 표지에 걸그룹 사진을 붙여 놓았던 앳된 청년 등등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들은 붙었을까? 아마 떨어졌을 것이다. 그 교실에서 시험을 친 스물세 명 모두가 아마 이번에도 떨어졌을 것이다. 익숙한 일이었다.
미라는 그날 할 공부를 마치고 밤 11시경 방에 돌아갔다. 불을 켜자 벽에 걸린 새파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취급 주의. 미라는 피식 웃고 옷을 갈아입은 뒤 세면도구 바구니를 챙겨 공용 욕실에 다녀왔다. 책상 앞에 앉아 접이식 거울을 보며 스킨과 로션을 발랐다.
잠들기 전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습관이었다. 미라는 연습장에 단어들을 빽빽하게 휘갈기며 왼손으로 새 창문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움찔하고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창문이 벽에 붙었어.]
[붙였으니까 붙었지.]
[그게 아니라 진짜 벽에 콱, 박혔다니까. 아니, 스며들었다고 해야 하나?]
미라는 팔짱을 낀 채 창문을 바라보다가, 단어를 마저 외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을 때, 종이 위의 파란 물감은 형편없이 번지고 흘러내려 있었다. 미라는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이 휙 불어들어왔다. 그런데,
바깥은 노량진의 풍경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취방이 있는 벽돌집 주위를 뱅뱅 돌았다. 밖에서는 미라의 창문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창밖으로 손을 뻗기까지 했는데.
“원래 그 위치에서는 저기 있는 태영고시원이랑 모닝베이커리가 보여야 되는 거거든. 더 멀리까지는…… 그래, 저쪽 철길까지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무슨 3D 스크린 같은 건가?”
“스크린이라기엔 너무 뻥 뚫려 있잖아.”
“그건 그렇지.”
“아, 젠장. 집주인 아줌마가 보면 뭐라고 하지?”
“집주인 아줌마가 네 방에 들어와?”
“아니 뭐, 한 달에 한 번 전기세 받으러 올 때. 아니면 나중에 방 뺄 때라도.”
“걱정 마. 넌 계속 거기 살 거잖아.”
“야, 죽을래? ……그나저나 어떡하지, 저거.”
“이제 창문 있는 방에 사는 거지, 뭐 별거 있냐.”
방에 돌아와서, 나는 오래도록 창밖을 내다보았다. 티없이 새파란 하늘 아래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록빛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태초의 지구처럼, 또는 멸망 이후의 지구처럼 깨끗한 세계였다. 죄도 환멸도 없는 공간, 뭐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공간. 나는 L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너한테는 뭔가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을 것 같았어. 트라우마 같은 거.”
“특별한 경험?”
“그래, 특별한 경험.”
“특별하다…… 특별하다. L이 죽은 게, 그저 경험 따위라고?”
“그래, 너는 운이 좋았던 거야.”
미라의 말투가 낯설었다. 나는 문 쪽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못 박는 데 썼던 망치가 손끝에 걸렸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장도리의 뾰족한 날을 어루만졌다.
“좀,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들 있지? 책이나 신문기사 같은 데 나오는 사람들. 나랑 다른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다들 남다르신 경험이 하나씩 있더라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든지, 존경하는 스승을 만났다든지, 아니면 뭐 대단한 재능이라도 발견했든지. 그런데 나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일어날 수가 없어. 나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 ‘태어났어’. 그러니까 나는 변할 수가 없어. 창문이 없는 공간에서 바깥을 상상해내는 일이 가능하겠니? 너도 L 덕분에 바깥이니 안이니 창문이니, 그런 소리를 하게 된 거야. L이 네 눈앞에서 죽어주지 않았다면 너도 나랑 똑같았을걸.”
“내가 너랑 뭐가 그렇게 다른데.”
“너는 네 맘대로 살잖아. 그러면서 속으로는 나를 무시하지. 그렇게 살고 싶냐? 넌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지, 이렇게 생각하잖아, 넌.”
“그럼 내가 네 눈앞에서 죽어주기라도 하면, 너도 네 맘대로 살 수 있겠네? 그 정도 경험이면 되는 거야?”
“아니, 난 너 잡을 건데.”
“뭐?”
머릿속에서 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는 나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너 왜 안 잡았어?”
“……무슨 소리야.”
“네가 L 뒷자리였다며.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넌 다 보고 있었잖아. L이 일어섰을 때 이상한 느낌 안 들었어? 뛰쳐나간 것도 아니고, 교실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부를 수 없었어?”
“……”
“혹시……”
“그만해.”
“너, 일부러 안 잡았지?”
순간 나는 들고 있던 망치를 유리창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망치와 유리 파편들이 어딘지 모를 저쪽 세계로 날아갔다. 푸른 들판에 털썩, 이슬을 튕기며 떨어지는 망치와 반짝이며 흩어지는 유리 파편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저 공간이 저렇게 엄연한데.
“네 생각에도 L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지? 네 생각에도 바깥은 그 허공밖에 없었지? 나는 어때?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죽을 수밖에 없어?”
나는 미라를 노려보았다. 눈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은 L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살아 돌아온다 해도 바깥은 여전히 허공일 뿐이라면. L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바깥이란 게 있다고 믿니?
그때였다. 옆방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벽을 두들겼다.
“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 조용히 좀 못 해!”
우리는 고분고분 숨을 죽였다. 여기는 여전히 창문 없는 미라의 방, 창문이 생길 수 없는 방이었다.
사족_ 5년 전에 쓴 소설인데 고치면 고칠수록 더 산으로 가기에 최소한의 수정만 거쳐 공개합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노량진 육교도 철거되어 버렸네요.ㅋ
묵은해와 함께 묵은 원고도 털어버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