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5 ~7.1
한 달이 넘게 일기를 안 올렸다. 나름 장편에 치중하느라 브런치 업뎃에 한동안 소홀했던 것. 밀린 일기를 울면서 써내야만 하는 개학 전날 초딩 신세는 아닌 만큼, 지난 한 달의 일들은 쿨하게 떠나보내기로 한다.
……역시 난 쿨하지 못하다. 마음을 돌려 간단한 근황만 기록해본다.
6. 5: 갑작스런 어지럼증으로 뇌질환을 의심했으나 이비인후과에서 물리치료 한 번에 완쾌. 이석증이란다. 하루 정도 머리를 크게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권한대행 시절 황교안 자세로 생활함.
6.10: 킨텍스에서 열린 여성발명품박람회에 엄마 발명품이 전시됨.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 기념사진도 찍고 박람회 구경도 했다. 엄마는 발명을 하고 나는 글을 쓰고 막내는 디자인을 한다. 신기한 가족인 듯.
6.11: 신명날 만큼 거침없는 막장 불행 스토리, [캉디드]를 다시 읽음. 기억과는 달리 결말이 상당히 건전하고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한울판 180쪽) 내 상상력은 [캉디드]와 [어린 왕자]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듯하다.
6.17: ‘글이 안 써지면 거지같이 쓰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음. 아무리 개소리라도 좋다. 시동 걸리기 전에 부릉부릉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마리 문장 하나만 찾으면 그때부턴 즐겁게 달릴 수 있다.
6.23: 얼마 전 내 지병을 쭉 적어보니 무려 아홉 가지에 달함. 만신창이에 총체적 난국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8체질 한의원을 찾아감. 음식·침 치료 위주라 큰돈이 안 드는 만큼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다녀보기로 함.
6.25: 5월초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던 ‘에어컨 청소’를 드디어 끝냄! ‘청소’도 아니고 ‘청소 전화 예약’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었던 나의 게으름에 치얼스. 기사 아저씨가 내 옥탑방을 보고 정유라를 욕하셨다. 그런 데 돈 쓰지 말고 순수예술(?) 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며. 난 내 방 괜찮은데……
7.1: 내 체질에 소고기가 좋다고 해서 난생 처음 내 돈 주고 냉동 소불고깃감을 사서 볶아 먹었다. 소고기볶음은 [토지] 다음 장면을 읽으며 먹는 게 제맛. 임이네가 숨겨두고 혼자만 먹던 고기를 주갑이 훔쳐 먹다 기화한테 들키는 대목이다.
“손님 들으시오. 이 오갈솥에 뭣이 들었는고 허니 개깃국도 아니고 쇠개기 볶은 거다 말시. 야들야들헌 살개기만 듬북듬북 넣어서 환장허게 맛나게시리 볶은 거다, 그 말 아니여라우? ……(중략)…… 손님도 잡숫지 않았더라고? 손님이 오시던 저녁상에 쇠털이 매욕한 개깃국, 야, 생각이 날 것이요잉? 그러니께로 임이넨가 그게 천하 악독한 제집이다, 그 말이어라우.” (마로니에도 나남도 아닌 무려 ‘솔판’ 토지 5권 397쪽)
‘천하 악독’하지만 요리 솜씨는 좋았던 임이네의 소고기볶음 레시피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