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7. 23
또다시 장편작업 흐름을 놓쳐버렸다. 불과 한 달 전에 ‘안 써질 때는 거지같이 쓰면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는데 그 진리조차 소용이 없었다. 하긴 늘 이런 식이다. 10년여의 습작기간 동안 깨달음만 수백 번은 얻었을 것이다.
이러다 책 한 권 못 내고 인생 쫑나는 건 아닐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메리 앤 셰퍼는 평생 ‘언제나 글을 썼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작품은 좀처럼 완성하지 못’하다가 죽기 전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편의 소설을 탈고했다고 한다(429~430쪽).
내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며, 내가 쓰고 싶었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실망들을 감당해야 할까?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내가 만족할 만한 작품’이 완성되긴 할까?
때로는 재밌는 예능과 드라마와 책과 영화가 두렵다. 평생 남의 것만 보면서 살게 될까봐.
요즘은 <나 혼자 산다>에 빠져서, 일상생활 중에도 무지개라이브의 코멘터리를 떠올릴 정도다.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멍 때리다가 뜬금없이 망치와 드라이버를 꺼내 냉동실 성에(를 넘어선 얼음층)를 깨부수는 작업에 몰두했는데, 박나래의 ‘갑자기요?’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사방에 얼음이 튀어 방바닥이 물바다가 됐지만 얼음조각가로 빙의한 듯 은근히 재미있었다. 10여 분의 망치질 끝에 냉동실 용적의 1/3을 차지하던 얼음이 3/10 정도로 줄었다. 1/3-3/10은 통분해서 10/30-9/30이니까 제거된 얼음의 총량은 냉동실 용적의 1/30이라는 건 물론 개소린데 통분이란 단어가 너무 오랜만이라 어쩐지 정겹다. 어쨌든 냉동밥 하나쯤은 더 들어가겠지.
눈물겨운 체질식 중이다. 소고기가 좋은 그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지난 일기 참조) 날벼락과도 같은 진단이 나와서, 쌀과 잎채소와 해산물밖에 먹을 수가 없다.
야식타임, 과자가 넘나 땡기는데 밀가루 금지여서 쌀부침가루에 건새우를 갈아넣고 반죽한 뒤 후라이팬에 한참 구워서 새우쿠키(???) 비슷한 걸 만들어 먹었다. 과연 작심3주 정도는 넘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