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무대를 기억하며
모든 악기가 그렇듯이, 혼자 배우기만 하면 금새 재미를 잃기 쉽다. 독학은 더더욱 그렇다. 유튜브 영상과 책, 악보는 넘쳐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가르치는 선생님과 단둘이서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시 혼자 연습하며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느리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법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외로움과 인내를 함께 견뎌내는 시간에 가깝다. 혼자 연습실에 앉아 같은 소절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그 질문에 답해 줄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색소폰을 외롭지 않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부터 교회 색소폰 밴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난 뒤, 교회 지하 연습실에서 많게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합주 연습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합주실에는 늘 각기 다른 속도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이는 이미 연주에 익숙했고, 어떤 이는 이제 막 악기를 손에 쥔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가끔은 장로님의 권유를 듣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바로 합주 연습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에게 당장 뛰어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나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조심스러운 선택을 했다. 처음부터 합주에 뛰어들기보다는, 네 달 정도 개인 레슨을 받으며 기초를 다진 뒤에 밴드에 합류하기로 했다. 합주에 이름만 올려 놓고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 연주를 구경만 하느니, 차라리 혼자서라도 차근차근 기초를 쌓은 뒤 참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운지, 호흡, 박자, 음정. 혼자서 지루하게 반복했던 그 기초 연습들이 나중에 합주 속에서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합주는 보통 일요일 오후 두 시쯤 시작됐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하나둘 모여들면, 다음 특송곡을 중심으로 연습이 진행됐다. 테너, 알토, 소프라노 각 파트별로 자리를 정하고, 지휘자 집사님의 안내에 따라 악보를 넘겼다. 밴드 이름은 ‘브라스밴드’였다. brass라는 단어가 관악기, 혹은 관악기 중심의 악단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대부분이 색소폰이었지만, 트럼펫을 연주하는 멤버도 두 명 있었다. 서로 다른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하나로 맞춰질 때, 혼자 연습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묘한 에너지가 생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일 예배보다 이 합주 연습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건 신앙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이 시간이 나에게 ‘함께 배우는 자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쉽게 포기했을 순간에도, 누군가 옆에서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박자를 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악기를 들 수 있었다. 합주에 참여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지휘자 집사님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번 관악부 특송에 같이 참여해도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개인 연습 때는 잘 되던 손가락 운지가 합주만 들어가면 자꾸 틀어졌다. 내 소리만 신경 쓰기에도 벅찬데, 다른 파트 소리까지 들으며 박자를 맞춰야 했다. 여기에 ‘무대에 오른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지자, 연습 외의 시간에도 머릿속은 온통 악보로 가득 찼다. 틈만 나면 악보를 들여다보며 계이름을 외웠고, 손가락이 공중에서 저절로 움직이기도 했다. 연주하지 않는 시간에도 연습은 계속되고 있었다. 연주가 예정된 예배는 아침 9시. 대부분의 신도들이 참석하는 11시 예배와 달리, 9시 예배는 사정상 일찍 올 수밖에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다. 규모도 작고 조용하다. 연주 시간은 9시 20분쯤이었다. 8시 반부터 리허설을 간단히 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첫 무대였다. 몸 전체가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었다. 손에 쥔 색소폰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부분에서 손가락이 엉켰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알고 있는 음이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연주를 마친 뒤 누군가는 “로봇이 연주하는 줄 알았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긴장한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만족스러운 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큰 사고 없이 첫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놓였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 무대는 완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시작을 허락받는 자리였다는 것을. 이제야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다. 처음은 언제나 수줍고, 떨리고, 서툴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첫 경험이 있어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혼자였다면 아마 이 첫 무대를 끝내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을, 함께라서 겨우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