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회'가 더 맛있어 지는 순간

by 시에스타

금요일 저녁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토요일 오후에 ‘광안다찌’를 예약하겠다고 했다. 보통 이런 집은 여럿이 모여 가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누구와 함께 먹는 자리인지 물었다. “우리 둘이.” 짧은 대답이었다.


작년 막내가 연세대에 합격했다. 큰 애와 둘째 모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제 집에는 우리 부부 둘만 남았다. 작년에는 작은 평수로 옮겨 이사를 했다. 넓은 공간보다 깨끗한 집, 둘이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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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주말은 늘 바빴다. 학원에 데려다주고, 과외 선생님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태워 오곤 했다.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많았다. 비슷한 또래 부모들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일이다. 그때는 그 시간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니 집은 조용해졌다. 가끔은 허전하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보내던 시간들이 사라져 좋기도 하다. 주말에도 눈치 보지 않고 약속을 잡을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시간 때문에 미루는 일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결혼시킬 시기는 아직 멀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느 정도 한고비를 넘겼다는 느낌이 있다. 긴 시간을 달려온 뒤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토요일 오후, 집에서 걸어 나갔다. ‘광안다찌’까지는 10분 정도 거리였다. 가게에 들어서자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광안리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이 집은 메뉴판이 따로 없다. 한 사람당 정해진 금액을 내면 그에 맞는 음식들이 차례로 나온다. 해산물과 회, 여러 가지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에 하나씩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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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바다 맛이었다.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얼굴을 보게 된다. 아내의 이마 위에 흰머리가 몇 가닥 보였다. 아내도 내 얼굴을 보며 웃는다. 아내는 가끔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는다. 나는 아직 그런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미간 주름이 꽤 깊어졌다고 한다. “보톡스 한 번 맞아 봐.”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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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때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뭘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울을 보며 깊어지는 주름을 확인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창밖으로는 석양이 바다 위로 길게 내려앉고 있었다. 광안리의 저녁 풍경이 천천히 물들어 간다. 아이들을 키우던 시간에는 늘 바쁘게 흘러갔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책임도 많았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부모로 살았다.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부부로 남았다. 서로의 흰머리를 발견하고, 주름 이야기를 하며 웃는 저녁. 특별한 날도 아니고 대단한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바다를 보며 회 한 접시를 나눠 먹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게 된다.

사람의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대개 이런 평범한 순간이라는 것을. 석양이 비친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회 맛은 유난히 고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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