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을 불다 보면 결국 음색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음정을 맞추고, 악보를 틀리지 않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음을 불어도 어떤 소리는 부드럽게 귀에 들어오고, 어떤 소리는 어딘가 거칠게 튀어나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음색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알토 색소폰을 불 때는 이런 생각이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잡으면서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소프라노는 고음을 낼 수 있느냐보다 그 고음이 얼마나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들리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인 높은 소리는 금방 티가 납니다. 반대로 힘이 빠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소리는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느낍니다.
아마 알토만 계속 불었다면 레슨 선생님을 바꾸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기존 선생님은 제가 색소폰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분입니다. 악기 소리를 내는 기본적인 방법, 호흡과 입 모양, 초보자가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 주셨습니다. 덕분에 악기를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래 배우다 보니 서로 편해졌고,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통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업이 조금 느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슨 시간은 1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집중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원하는 곡의 MR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찾는다거나, 새로운 악보를 그 자리에서 찾아보느라 시간이 흘러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악기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선생님은 알토 연주에 강점이 있는 분이었고, 저는 점점 소프라노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습니다. 입술이 아프지 않으면서 고음을 내는 방법, 음정이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감각, 힘을 빼고도 소리를 유지하는 방법 같은 것들 말입니다. 질문을 하긴 했지만 어딘가 답이 충분히 닿지 않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여러 연주 영상과 레슨 영상을 보다가 부산에 계신 L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토도 하시지만, 소프라노 색소폰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분이었습니다. 집과 직장에서 거리가 꽤 있습니다. 차로 30~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상담만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갔고 결국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수업에서 받은 인상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던 부분을 바로 짚어 주었습니다. 특히 입술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고음을 편하게 내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장 그 기술이 제 것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익숙해지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감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방향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막연하던 문제가 구체적인 연습 과제로 바뀌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교회 음악 PD인 K 집사도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합니다. 지난 주일 합주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레슨 선생님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L 선생님 이름을 말하자 워낙 유명한 분이라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요즘 슬럼프가 와서 연습도 잘 못하고 있었는데 자신도 한 번 레슨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K 집사와 함께 레슨실에 갔습니다. 선생님과 색소폰에 관한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었습니다. 오래 연주해 온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였습니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악기를 오래 붙든 사람들의 말에는 경험에서 나온 무게가 있었습니다.
뒤이어 K 집사가 첫 수업을 받고 나왔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10년 동안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혼자서 오래 붙들고 있으면 해결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시행착오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실력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혼자 오래 고민할수록 더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조금의 비용이 들더라도 방향을 정확히 잡아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덜 쓰게 됩니다. 무엇보다 괜한 힘을 빼게 됩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습하면서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좋은 소리는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억지로 밀어붙일수록 소리는 거칠어지고, 오히려 힘을 빼고 방향을 찾을 때 소리가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레슨 선생님을 바꾸면서 익숙한 자리에서 계속 머무르는 것이 편할 때가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편안함이 우리를 같은 자리에서 머물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조금 멀더라도 다른 길을 한 번 걸어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레벨을 올리고 싶다면 연습 방법만이 아니라 배움의 방향도 가끔은 바꿔야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