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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l 01. 2022

비는 소리로 온다


비가 온다. 비는 소리로 온다. 고층 아파트 16층에 살 때는 비가 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시야가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비가 세차지면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의 속이 빈 쇠를 두드리는 텅터엉텅 소리가 났다. 그곳에서는 그게 빗소리였다.



  1층살이를 하는 지금은 다양한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빗방울이 키 큰 나무에 떨어지며 내는 트트트트 소리는 자음 티읕이 흩어져내리는 것 같다. 굳이 인간의 목구명과  입술소리인 모음을 섞어 넣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럽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나뭇잎 한 잎 한 잎과 만나는 ㅌㅌㅌㅌ가 모여 잎맥과 가지를 타고 내려와서 아래에 있는 넓은 잎에 부딪히며 툭 투둑 툭 굵은 소리로 바뀐다. 이 소리는 비가 제법 많이 오래 와야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바늘비나 이슬비가 나뭇잎을 오래 적실 때는 겨우 툭..... 툭...... 하는 소리가 날뿐이다.



비는 제 몸에 닿는 것들을 두드려 소리를 만든다. 마당에 엎어져 있는 빈 플라스틱통을  두드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북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벤취를 두드려 탁한 목탁소리를 내기도 하고 쇠에 부딪혀 띠잉띵 깊이 울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아스팔트 위로 차가 지나갈 때면 치이이익하는 소리가 난다. 자동차 바퀴가 빨리 움직이면서 물이 갈라지는 소리다. 차가 없던 옛날에는 비가 만들 수 없었던 소리이다.



얇고 넓은 판일수록 빗소리는 크게 들리고 많이 울린다. 비 오는 날 산에서 텐트를 친 적이 있었는데 텐트 안에 누위 들으니 내가 큰북 속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숲의 키 큰 나무들에 고였다가 떨어지는 빗방울이 텐트의 얇은 천에 떨어질 때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북 판처럼 얇은 천을 연속적으로 두드려대니 비가 우다다다 다다닥 딱딱 탁 북춤을 추는 것 같았다. 



비가 온다. 비는 부딪히며 울리는 타악기의 소리로 온다. 사람의 몸에서 타악기의 소리가 나는 곳이 있다. 흔히 두 근 두 근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같다. 아마도 핏줄기가 솟구치며 판막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태어날 때부터 제 속에 흐르는 것의 두드림과 함께 했던 인간에게 빗소리는 소음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흐르는 것들이 살아있다고 두드리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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