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로 마음(心) 배꼽에 점(點) 찍기
우다당탕 퉁탕 철컥 툭탁 털거덕.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집 앞에서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한다고 포클레인이 땅을 쑤시고 있다. 내 잠도 같이 쑤시고 있다. 더 자기는 틀렸다. 일어난다, 부스스.
전화를 돌린다. 열 한 시 반. 누구는 심학산 도토리 국수, 누구는 녹두삼계탕, 이미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나랑 마음(心)의 배꼽에 점(點)을 찍을 사람이 없다. 할 수 없다. 내 점심(點心)은 내 손으로 그려야겠구나.
냉장고에서 국물 흥건 쌈김치를 꺼낸다. 이거 하나로 국수나 말아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냉장고 문을 닫으려는데, 어이없어하는 오이의 삐죽거림이 들린다. 아, 오이가 있었지, 얼른 꺼낸다. 다시 냉장고 문을 닫으려는데 다르다르걀걀 나도 데려걀걀, 달걀이 데굴거린다. 달걀도 두 개 꺼낸다. 냉동실을 연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없다. 메밀국수가 보인다. 꺼낸다.
한때 봉평 어느 땅에서 뾰롱뾰롱 여린 연두 싹으로 돋아 오뉴월 따신 볕에 쑥쑥 자라다가, 칠팔월 여름 덥고 검은 밤 심심한 달빛이 건드리는 간지럼에 까르륵 깔깔 하얀 꽃 무더기를 피우다가, 서늘 가을이 되어 새끼손톱보다 작은 열매가 되었던 메밀. 그것을 곱게 빻아 내린 가루로 뽑은 국수.
한 손으로 쥐어도 흩어지고 두 손 모아 쥐어도 흩어져 가루로 날리니 저것을 어찌 달래 하나로 모아 보나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다가 물 한 줌 넣고 열 손가락으로 살살 달래고 어르고 주물러 매끈 단단 말랑 탱탱 덩어리로 만들어, 네 마음이 얼마나 넓은가 보자꾸나. 네 사랑이 얼마나 긴가 보자꾸나, 꼬드겨 슬슬 밀어 싹싹 썰어낸 봉평에서 온 메밀국수다.
지금부터 국수를 삶아 보겠다. 마른 면이다. 가늘고도 길어서 엄지와 검지 끝으로 살짝 잡아도 쉬 허리를 꺾고 주저앉으니 그저 조심조심 다루어 팔팔 끓는 물에 넣어주면 버티며 부러지던 초심은 어딜 가고 뜨거운 기운에 같이 달아올라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부드럽고 낙낙하구나. 불길이 세지니 더욱 뜨겁게 달아올라 앞자락 풀어헤치고 파르락 거릴 때 찬물을 촤르륵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한 후에 매우 쳐라, 아니 치대서 풀기를 뺀다. 국수 삶기 끝.
고명은 오이는 가늘게 채 썰고 달걀은 지단 구워 썰고 쌈김치도 국수랑 어울리게 길쭉 얍상하게 썬다. 넓적한 그릇에 삶은 국수를 담고 오이, 지단, 김치를 얹고 슴슴한 김치 국물을 붓고 참기름 몇 방울을 조롱조롱 떨어뜨린다. 입 안에 침이 돈다. 세상 시끄러워도 국수가락 쪽쪽 빨면서 맛에 취하면 된다. 젓가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면발을 휘어잡아 올린다.
순간, 세상이 조용하다. 공사하던 사람들도 점심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