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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30. 2022

엄마, 숨 쉬어.

인생은 드라마처럼 미리 세팅이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감정이 몰려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딸과 마주 앉아 수육에 새우젓을 찍어 먹다가 그런 일이 생겼다. 그저 그런 일상 잡담을 나누다가 생긴 일이었다. 지금은 어떤 이야기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상황이 촉발되었는지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난 엄마한테 너 힘들었겠다는  말 듣고 싶었다고요. 지금이라도 해주세요. 한 번만요, 네?  해보세요. 너 힘들었겠다!"


나는 딸에게 그 아이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한 번만이라도 지금이라도 듣고 싶다는데 '아니 난 하지 않겠어' 거절했다.  


만약 딸이 아니라 그냥 스물여덟의 누군가가 이십 대 초반 힘들었다고 그때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면 그가 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너 참 힘들었겠다는 말을 했을 거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딸에게는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딸에게 아주 단호하게 하지 않겠다고 도리질을 쳤다.


딸의 울부짖음은 잊고 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왔다. SNS의 과거의 기록들을 삭제하듯 그렇게 기억에서 삭제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늪처럼 다시 꿈틀거리면서 내 숨통을 조여왔다. 딸이 힘들었던 시간과 내가 힘들었던 시간은 같은 시기에 다른 공간에서 있었던 시간들이다.


나로서는 너무 힘들어서 힘들다는 내색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던 때였다.  얼마나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나 하면 딸아이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그  입학식에 가지를 않았다. 공부방을 할 때였는데 내 자식 입학식에 가느라 하루 쉬었다가 그만두는 학생들 있을까 봐 두려워서 못 갔다. 나중에 누가 그랬다. 그런 일은 오히려 학생들 집집마다 휴강 안내문을 빙자한 광고를 돌려 소문을 내야 하는 일이라고. 그러면 학생들이 왕창 늘었을 거라고 농담처럼 그랬다. 그러나 그때는 그만큼 재고 따지지 못할 만큼  절박했다.


그러니 그해 봄 대전 딸의 학교에서 있었던 여러 건의 자살 기사에 가슴을 철렁이면서도 딸에게 제대로 안부를 물어주지를 못했다. 그저 며칠에 한 번 걸어오는 딸의 전화에 안도할 뿐이었다. 딸의 목소리가 기운이 없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면서도 너 힘드냐 묻지를 못했다. 너무 조마조마해서 차마 그 말을 입으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어렵다는 기초과목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기만 했었다. 학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얼마라도 등록금을 내야 할까 봐 심란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십 년 전 그때 위로받지 못했다고 지금이라도 그때의 힘듦을 알아달라고 엉엉 운다. 그 당시의 몇 년은, 그러니까 나의 사십 대  중후반은, 그 아이의 인생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내 삶의 거의 전부가 쏠려있던 시간이었는데 그 아이는 그 시간이 아주 힘든 시간이었고 그 힘든 시간을 엄마가 몰라줘서 섭섭하다고 운다.


나는 그때 무엇을 한 것인가라는 당황스러움이 몰려오면서 이를 악물고 끙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버텼던 시간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너 힘들었겠다고 말해달라는 흐느낌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달라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내가 그 시절을 잘못 살았다고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딸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퍽, 누가 등짝을 때린 것처럼 순식간에 몸이 꼬꾸라지면서 울음이 터졌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입에서 엉엉 소리가 나는 울음이 아니라, 허리가 꺾이면서 가슴이 억억 막히는 정말 이상한 울음이었다. 숨을 쉬고 싶은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아 가슴팍을 턱턱 두들기게 되는 울음이었다. 십 년이 다 되어가는 묵은 시간의 서러움과 억울함과 외로움이 뒤섞여 한꺼번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그때 갑자기 딸이 벌떡 일어나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숨 쉬어"


하면서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자 그 이상한 울음이 사르르 잦아들었다. 훅 숨이 쉬어졌다. 그제야 너 스무 살도 아닌 열여덟 살 그때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타이밍이 땡 끝나버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드라마처럼 모녀가 부둥켜안고 울거나 하지도 않았다. 딸은 딸대로 에미는 에미대로 각자의 눈물과 콧물을 닦고 다시 수육에 새우젓을 얹어 먹기 시작했다.


매미가 찌르르르 햇빛을 찌르며 울어대는 2021년 팔월 어느 날 정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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