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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n 19. 2022

사람에게 기대다


살아오는 동안 사람에게 등을 떠밀려 넘어지기도 하고 사람에게 걸려 엎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손을 잡아 일으켜준 것도 사람이고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워준 것도 사람이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 같다. 힘들 때 사람에게 기대었다가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고 해서 일단 나 자신을 먼저 단단히 세우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나는 서툴다.


사람이란 게 그다지 훌륭한 존재가 아니라서 ​경계하는 마음보다 다가가는 마음이 크다. 사람이라서 빈틈이 있다. 그 틈으로 빛을 보기도 하고 어둠을 보기도 한다. 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틈에 스민다. 나도 당신도 그렇다. '우리'라는 무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사람이라서 찌그러진 구석이 있다. 타인의 구석에 쌓인 먼지로 내가 콜록 기침을 하다가 눈물을 쏙 빼기도 하고, 쑥 들어간 타인의 구석에 나의 도드라진 뾰족함을​ 얹고 쉬기도 한다. ​


20대에 설악산에 갔다가 폭우를 만난 적이 있다. 산 정상 부근에 있다가 내려오면서 보니 올라갈 때 껑충껑충 건너뛰던 계곡의 바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살벌한 황토색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산이 전날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을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콸콸 쏟아져내려 오는 물을 건널 때 기다란 통나무를 잡고 건넜다. 여러 곳에서 그랬다. 산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이 안전하게 물을 건널 수 있게  굵은 나무를 잘라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쳐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모르는 사람의 호의에 기대 물을 건넜다. 덕분에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폭우를 퍼부을 때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호의를 붙잡고 인생의 급류를 건널 수 있었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사람으로 인해 힘을 내기도 했다. 사람들 덕분에 살아내고 있다. 나는 계속 사람에게 기대며 살 것이다.


이 글은 사람이라는 단어가 열다섯 번 나온다. 그 열다섯 명의 배후에는 또 각각의 열다섯 명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듭제곱이다. 나 하나는 아무리 곱해도 하나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거듭제곱을 무한히 반복하며 넉넉해진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은 우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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