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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l 10. 2022

양말 세 켤레

시린 마음의 발을 감싸주는 말


나는 사시사철 양말을 신는다. 심지어 잘 때도 신는다. 물론 여름에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추위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발가락이다. 발가락이 시리면 금방 배가 차가워지고 몸 전체가 추워지고 마음이 오그라든다. 그러니 양말은 일 년 내내 나의 필수품이다. 


여름 무더위에도 양말을 신는다. 심지어는 샌들이나 납작한 여름 운동화를 신을 때도 양말을 신는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놀린다. 촌스럽단다. 발가락만 가리는 양말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발등을 덮어주고 발목을 감싸주는 양말을 신는다. 


내가 이렇게 양말을 피부처럼 내 몸에 붙이고 살게 된 것은 수술실의 냉기를 내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그때가 5월이니 그리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있을 때 너무나 발이 시리고 시리다 못해 아파서 울었다. 간호사가 이불을 두 개나 덮어주고 담요까지 찾아 얹어주었지만 발은 여전히 시렸다. 


잠시 마취과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그 이유를 안다. 수술하기 위해 의료진이 입는 옷은 얇지 않은 면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위에 긴 팔로 된 수술복을 또 입는다. 그리고 두건을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이런 상태로 여러 시간 수술하다 보면 당연히 덥다. 그러니 수술실 안은 아주 세게 냉방을 튼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대에 알몸으로 눕는다. 당연히 맨발이다. 전신마취를 한 상태라서 춥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맨발은 수술실의 냉기를 고스란히 기억한다. 나는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고 수족냉증이 심한 편이어서 더 발이 시리다고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수술을 받던 당시, 여러 가지 환경적 어려움으로 마음도 추운 때였다. 사방이 젖어 있었고 살얼음판이어서 어느 곳을 디뎌도 마음의 발이 시렸다. 마음의 추위가 수술을 받는 동안 몸에 붙은 발로 옮겨가 조금만 추워도 발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양말을 선물 받았다. 발목까지 오는 여름 양말 세 켤레. 하늘색과 연한 노랑과 연초록색의 양말이다. 놀이동산에서 파는 솜사탕 같은 색들이다. 지하철역에서 파는 양말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 말에 시린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달콤한 솜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처럼 까르르 웃음이 난다. 


‘네가 생각이 났어.’라는 다정한 말이 폭신한 양말이 되어, 얼음 속에 묻혀있던 마음의 발이 따뜻하게 녹는다. 연노란색 양말을 신으면 나폴나폴 가볍게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연초록색 양말을 신으면 성큼성큼 씩씩하게 잘 디딜 것 같다. 하늘색 양말을 신으면 폴짝폴짝 하늘을 날 듯이 잘 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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