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소리

여름은 살아있는 소리의 계절이다

by 최희정

언니집에 왔다. 형부랑 언니랑 셋이 물회를 먹었다. 회를 다 먹고 맵고 달고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에 따뜻한 밥을 말아먹었다. 형부는 '아 맛있게 잘 먹었다'그런다. 언니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하네'그런다. 나는 '아아 배가 너무 불러서 숨이 안 쉬어져' 그랬다. 언니가 나보고 숨 쉬어질 때까지 안방 언니 침대에 가서 가만히 누워있으란다. 나는 언니 말대로 까실한 여름 요가 깔린 침대에 누워있다.


거실에서는 언니랑 형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배우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중중 장장’과 ‘우우웅’ 효과음이 들리고 ‘휙’과 ‘퍽’ 그리고 ‘으헉’이라는 효과음도 들린다. 목구멍으로만 나지막하게 내뱉는 남자 배우의 '살려달라고 빌어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머 어떡해'라는 언니의 놀란 목소리가 섞인다. 이제 드라마가 끝났나 보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사회자의 높은 목소리와 군중의 함성이 울린다. 아마도 올림픽 중계방송으로 채널이 바뀌었나 보다. 다시 채널이 돌아가면서 말이 끊어지고 이어진다. 재미있는 방송이 없나 보다. '아함' 형부의 하품 소리가 들린다. '나와서 옥수수 먹어' 하는 언니의 목소리에 형부가 소파에서 일어서면서 내는 가죽 밀리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생각난다. 차가운 방바닥에 누웠다 엎드렸다 뒹굴뒹굴하면서 책을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열어놓은 창밖으로는 옆집 다락방에 살던 남자 고등학생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내려왔다.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라는 방송이 주로 들렸다. 흥이 나면 기타를 뚱땅거리면서 팝송을 따라 불렀다. 작은 언니는 들으라는 듯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 드럽게 못 부르네'라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면 그 남학생은 더 큰소리로 악악거렸다.


열린 방문으로는 거실 지나 안방에서 나는 소리가 들어왔다. 엄마의 바쁜 발소리에 이어 '아휴 덥다 더워 땀이 비 오듯 하네'라는 헉헉 숨찬 목소리가 들리고 '딸깍' 선풍기 스위치 누르는 소리가 나고 '팔락 팔락' 부채 부치는 소리가 났다. '아 왜 이렇게 이 밑에 땀이 차는 거야'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가슴 밑을 수건으로 닦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아빠가 신문 펼치는 소리도 나고 텔레비전 켜는 소리와 딸각거리며 둥그런 모양의 채널 조정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났다. 아빠는 주로 뉴스 방송을 보았다. 남자 아나운서의 딱딱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안방에 계시는 소리가 나면 나는 촉수를 바짝 세워서 안방에 투명 탐지기 하나를 꽂았다. 언니들과 함께 쓰는 방에 배를 깔고 누워있다가도 아빠가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서 전과나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보다가 던져둔 완전정복이라는 자습서를 펼쳐 놓고 책 귀퉁이에 써진 잡다한 지식이 들어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면 아빠는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스윽 방을 둘러보고 나가셨다. 하지만 가끔은 책상에 낙서가 가득한 공책을 펴놓고 졸고 있는 작은 언니를 발견하고는 언성을 높여 야단을 치셨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스윽 방에서 빠져나와 우렁우렁 집을 울리는 아빠 목소리에서 도망쳤다. 그래도 아빠 목소리가 아주 들리지 않는 먼 곳까지는 가지 않았다. 아빠 목소리가 들리지만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집구석의 구석을 찾아 숨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오는 기척이 나고 엄마가 나서서 아빠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는 척하면서 언니를 구출해내고 아빠 목소리가 잦아들면 슬그머니 다시 방으로 돌아가 배를 깔고 누워 발을 까딱거리면서 보던 책을 마저 보았다.


저물녘은 한낮의 소란이 잦아드는 시간이다. 골목을 지나던 자전거 소리도 집으로 가고 큰 길가를 지나던 자동차 소리도 퇴근하는 시간이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관자놀이를 지나 목덜미를 타고 흐를 때까지 놀던 아이들의 달뜬 목소리도 엄마 찾아 돌아가는 시간이다.


대신 이 집 저 집의 부엌에서 소리가 만들어졌다. 주인집의 넓은 부엌에서 ‘칙칙’ 압력밥솥에 밥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 집 부엌에서도 엄마가 한참을 부엌에서 덜그럭 덜그럭 음식 만드는 소리가 났다. ‘치르르’ 프라이팬에 기름이 튀는 소리가 나고 고소한 생선 기름 냄새가 방으로 번졌다. ‘얘들아, 상 차려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건너오면 안방으로 건너가 상다리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상을 펼치고 반찬을 옮기고 수저와 젓가락을 차리고 밥을 퍼 나르고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아빠와 엄마와 다섯 아이가 둘러앉아 생선구이를 발라 먹으며 저녁밥을 먹었다.


그때의 여름은 열려 있었다. 더위를 내보내고 바람을 들이기 위해 열어놓은 문으로 소리도 같이 들어오고 나갔다. 담장을 넘어오는 옆집의 나팔꽃 덩굴처럼, 우리 집 수돗가에 툭툭 떨어지는 뒷집 감나무 잎처럼 소리가 드나들 수 있었다. 요즘 여름은 매미가 세상천지 곳곳을 맴맴 맴맴의 미음으로 격자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소리를 다 가두어 버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혼자만의 소리에 빠져 있다. 곳곳의 아파트는 방음이 잘되는 창호로 사람들의 소리가 넘나드는 것을 막아 버렸다. 식구들은 집 안에서도 자기 방에서 각자의 핸드폰으로 각자의 구경거리를 즐긴다. 예전에 사람들과 같이 살던 소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끼어들 틈이 없어져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악, 형부가 몸으로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만들어 내고는 언니에게 '여보, 왜 방귀 뀌어?' 그러면서 '하하' 웃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여름은 소리가 퍼지는 계절이다. 살아있는 소리가 있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