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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pr 05. 2022

오늘, 아들은 꿀벌이다

“아들, 요즘 엄마 마음이 슬퍼.”

“왜?”

“몰라. 자꾸 멍하고 울컥하고 그래.”

 

아들과 동네 쌀국수 식당에 가서 뜨거운 국수를 한 그릇 씩 먹고 커피를 한 잔 씩 들고 산책을 하다가 툭 말을 던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요즘 공부가 힘들어?”

아들이 이렇게 말하면서 바짝 다가와 내 어깨에 스윽 손을 얹고 나를 토닥여준다. 푸하하하 웃음이 났다. 젖은 마음의 물기가 살짝 빠진다. 어쩌면 아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엄마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엄마가 가끔 얘기하는, 엄마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이끌어주신 그분이랑, 엄마 글이 좋다고 언제 무엇을 물어보건 맞춤법을 알려주신다는 교정 전문가라는 분이랑, 그리고 지난주에 엄마 칭찬해줬다는 교수님도 있잖아.”

 

어어어? 아들이 갑자기 말로 밥값을 한다.

 

“교수님이 어떤 분이셔? 응? 시인이시라며?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신 분이라며? 그런 분이 칭찬을, 그것도 나도 아는,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인이랑 비교해서 칭찬해주신 거면 대단한 거야. 그리고 얼마 전에 전화 통화하는 거 들어보니 일대일로 질문에 답을 해주는 사람도 있는 거 같던데?”

 

아, 생각해보니 아들 말이 맞는다. 그래도 괜히 속이 허하다고 투덜거렸다. 고이는 것 없이 다 스며들고 흘러가 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당연하지. 엄마가 맨날 나한테 하는 말 있잖아. 꾸준히 시간을 쌓으라고. 엄마도 아직은 시간을 쌓는 단계인 거야.”

 

그러더니 아들은 자신의 큰 키를 이용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허허 뭔가 좀 거꾸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엄지척을 날리는 아들의 다른 손에는 내가 사준 비싸고 달콤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역시 잘 멕여야 꿀 같은 말이 나오나 보다.

 

말의 달큰함에 발걸음이 꼿꼿해진다. 갑자기 진한 꽃향기가 물큰 다가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들이 꽃에서 꽃으로 옮겨 다니며 잉잉거린다. 산수유에서 홍매로, 홍매에서 앵두꽃으로 벌들이 바쁘다. 집에 빨리 가서 뭐라도 해야지. 내 발걸음도 붕붕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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