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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21. 2022

엄마가 남자를 알아?

20대 아들, 50대 엄마


"아들, 커튼 좀 달아주라."


침대에 스며들던 아들이 순순히 나와서 커튼을 달아준다. 여름용 가벼운 것이니 십 분 만에 뚝딱 끝낸다.

"어때?"


"응응, 잘했네.


엄마의 칭찬을 받고 방으로 들어가던 아들에게 나온 김에 커피도 한 잔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엄마가 남자에 대해서 알아둘 게 있어."

"뭐?!"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당황하면서 궁금했다. 솔직히 마음속에서는 뭐라고? 내가 산 세월보다 반도 살지 못한 네가, 기저귀 갈아줘 가며 업어키운 엄마에게 충고를 하겠다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뾰족 뾰족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 남자들은 말이야. 일을 시킬 때 하나를 시키고 이어서 다음 일을 시키는 것을 싫어해. 그러니까 커튼을 달라고 하기 전에 커튼 달고 커피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좋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게임을 할 때 하나의 단계가 끝나면 보상이 있잖아. 그 보상도 없이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면 재미가 없지.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부탁하는 일이 싫지는 않아. 하지만 한 가지를 끝내자마자 다른 일을 또 시키면 하기 싫어져. 잘 끝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틈이 없거든."


나는 이제 스무 두 해 산 아들이 이렇게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는 것이 신기했다. 비유도 알아듣기 쉽게 해 주니 뿌듯하고 기특했다. 아들이 하는 양이 재미있어서 내 특유의 농담을 얹었다.


"그랬구나. 내가 남자를 모르고 반백 년을 넘게 살았네.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부터 미리 목록을 작성해서 줄게. 지금 막 몇 가지가 생각났어, 청소기 돌리고 쓰레기 버리고 음... 또... 아직 한 열 가지는 남았는데 뭐더라..."


"에혀, 그러니까 엄마가 아직 연애를 못하는 거야. 남자는 한 번에 세 가지 이상 시키면 못해."


아들은 혓바닥을 쏙 내밀어 늙은 에미를 약 올리면서 메롱메롱을 날리고 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내일 아침 메뉴는 냉장고를 뒤져 온갖 초록이들을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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