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가 생겼다. 국내산 생새우다. 딸이 온단다. 딸은 새우를 좋아한다. 싱크대에 서서 하염없이 새우를 깐다. 왼손에 새우를 들고 젓가락보다 가느다란 쇠꼬치를 새우살과 껍질 사이에 넣고 틈을 낸 후 껍질을 벗겨 낸다. 꼬리를 살살 돌려 뺀다. 수염을 제거한다. 배부분에 붙은 다리를 떼어내면서 머리를 제거한다. 이 과정을 서른 번 넘게 반복했다. 손끝을 살짝 찔려서 따끔거린다. 손가락 끝 피부가 주글주글하다.
그 사이 딸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좀 늦어요. 세 시가 넘어요. 두시쯤 온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시부터 새우를 다듬었다. 오면 바로 마늘향과 새우맛이 어우러진 파스타를 해주려고 준비 중이었다. 오자마자 바로 요리를 시작하려고 면을 삶을 물도 끓이고 있었다. 한 시간이나 늦는다니 순간 맥이 쑥 풀린다. 허기가 몰려온다. 쓸쓸함 비슷한 씁쓸함도 몰려온다. 식탁 의자에 앉아 천천히 오라는 답장을 보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마음이 뾰족해진다.
이러지 말자.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다짐하듯 외친다. 허기가 없어지면 뾰족함이 누그러질 수도 있다. 나 먼저 먹자. 그렇게 1인분을 먼저 조리한다.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혼자 먹는다. 분홍색으로 잘 익은 새우가 달다. 그냥 달다. 손가락 굵기의 새우살이 쫄깃쫄깃하다. 그냥 쫄깃쫄깃하다. 허기는 사라졌지만 기대하던 마음도 사라졌다. 마음이 조금 더 뾰족해진다.
딸이 왔다. "엄마 드리려고 미역국 끓여왔어요. 생신날 해드리지 못하니 미리 해왔어요. 맛있어요." "어 그랬구나. 어서 앉아라. 배 고프지? 난 먼저 먹었으니 너만 먹으면 돼." 미역국이 담긴 통을 냉장고에 넣는다. 그냥 넣어 버린다. 원래 이런 일에는 반짝거리는 반응이 필요하다. 부풀어 오르던 설렘이 뾰족한 섭섭함에 찔려 오버액션 토끼 같은 리액션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밥을 먹이고 필요하다는 것을 챙겨주고 데려다주고 왔다. 뾰족해진 내 마음들이 자꾸 나를 찔러 어두운 거실에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어제가 되어서야 딸이 갖다 준 미역국이 생각났다. 냉장고에서 꺼내 다시 끓였다. 밥을 한 그릇 푸고 국도 한 대접 푸는데 고기와 미역 사이로 희끗한 무엇인가가 보인다. 덜 다져진 마늘 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새우다. 새우젓 크기의 새우다. 국을 뒤적거려보니 꽤 여러 마리가 보인다. 미역국에 새우젓을 넣었다고?
국에 든 새우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냈다. 새우젓을 넣은 게 맞단다. '새우젓은 짭짤하고 맛있잖아요.' 그런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딸이 엄마 생일이라고 처음 끓여준 미역국이 소고기와 새우젓이 들어간 미역국이라니. 이건 딸이 왔던 날 뚜껑을 열어 맛을 보면서 '어머 너도 새우를 준비했네.' 하면서 둘이 깔깔 웃었어야 했다. 그날 뾰족했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딸아 우리는 새우로 통했구나. 새우젓 미역국이 달다. 맛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