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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26. 2022

가을이야, 소풍 가자

냉장고 앞에 상이 차려져 있다. 감 몇 알 들어있는 비닐봉지, 사과 몇 알 들어있는 것, 반찬이 들어있는 네모난 통도 나와있다. 할머니는 그 앞에 앉아 딸이 삶아 보내준 밤을 입에 물고 계신다. 새벽 두 시다.


"배가 고파서 일어났어. 이거 우리 딸이 엄마 배 고프면 먹으라고 보내준 거여.​"


할머니는 밤 몇 알로는 배가 차지 않는지 감이 들어있는 봉지를 열려고 하신다. 새벽 두 시에서 이십 분이 지났다. 간병사가 얼른 봉지를 잡는다. 다른 환자가 부스스 눈을 뜬다. 저 할머니는 혼잣말이 심한 분이라서 이 시간에 깨면 곤란하다. 목소리도 우렁차다. 지금 이 시간에 잠이 깨서 밤이라는 친구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시면 달리 잠을 재울 방법이 없다. 잠을 유도하는 약을 쓰기도 애매하다. 이 시간에 약을 쓰면 아침에 못 일어나 식사를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른 방을 조용히 정리해야 한다.


냉장고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부축해서 침대로 모시고 간다. 순순히 일어나신다. 할머니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일으키는 순간, 얼마 전부터 아픈 허리가 시큰하다. 간병사도 끙 소리를 내뱉는다. 체구가 작은 간병사도 몇 년 간의 이 일에 몸이 망가진 것 같다. 항상 허리에 복대를 하고 있다.


할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드린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신다.


"할머니 주무세요. 지금 새벽 두 시예요. 이 시간에 많이 드시면 소화 안되고 아파요."




할머니는 간병사가 자기를 굶기려고 먹을 것을 빼앗았다고 소리를 지르신다. 욕을 하신다. 젊어서 여러 가지 욕을 해본 솜씨다. 숫자 시리즈와 동물 시리즈와 귀신 시리즈의 욕이 골고루 밤의 어둠을 다르고 날아다닌다. 병실 저쪽 편 할머니께서 머리를 쳐드신다. 좌담회가 벌어질 판이다. 새벽 두 시 사십 분이다.


"할머니, 쉿! 조용히. 얼른 주무세요."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할머니 손을 덥석 잡다.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토닥거린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누구여? 간호사여? 내도 이만한 딸이 있어. 저거 감이랑 밤이랑 사과 딸이 내 먹으라고 보낸겨."


말씀을 하시다가 스르륵 눈을 감으신다. 내 손을 꼭 잡고서. 얼떨결에 내 오른손은 자장자장을 계속하고 있다. 숨소리가 나직해진다. 눈꺼풀이 살짝살짝 움직인다. 잠의 입구에서 눈꺼풀이 문단속을 하나보다. 내 손을 잡은 할머니의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린다. 근육의 긴장이 풀릴 때 나오는 현상이다. 이제 곧 깊은 잠으로 들어가실 거다. 할머니를 토닥이던 손짓을 멈추고 가만히 가슴을 눌러준다. '푸우.' 숨을 깊게 내쉰다.


드디어 꿈나라로 가셨다. 할머니 거기선 밤이랑 감이랑 사과랑 다 양껏 드셔도 좋아요. 따님 불러서 같이 드세요. 가을 소풍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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