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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Nov 03. 2022

귤 하나 드릴까요?

작은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일이 있어서 며칠 쉬었다. 그는 다시 출근하면서 귤을 몇 상자 사 왔다. 오늘 새벽 병동을 둘러보는 시간에 내 몫의 귤을 챙겨 환자분들께 드렸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과일가게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노랗고 동그란 귤. 오렌지처럼 껍질이 너무 딱딱해서 손으로 까기 힘들지도 않고 사과처럼 칼을 사용해서 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과일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껍질이 부드러워 아이들도 혼자서 쉽게 껍질을 깔 수 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 오래 계신 분들은 의외로 혼자 귤을 까서 먹는 일이 서툴다. 귤을 쉽게 접하고 먹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 동안 멀어져 있어서 그렇다. 오랜 지병으로 손가락 근육이 굳어서 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    


  

귤이 담긴 봉지를 들고 복도를 걷는데 보행 보조기를 밀며 운동을 하고 계시던 ‘진명’ 할머니를 만났다. 이분은 항상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복도 걷기 운동을 하신다.    

  

“귤 드실래요?”     


내 손안에 들어있는 귤을 보여드린다. 휴게실 의자에 앉혀드리고 껍질을 까드렸다. 한쪽씩 떼어내 드리려고 하자 혼자 할 수 있으시단다. 천천히 드신다. 오물오물 씹어 꿀꺽 삼키신다. 새콤하니 맛있다는 인사도 해주신다.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핀다. 하나 더 드리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나 먹으라고 사양하신다. 그리고는 일어나셔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신다.      



10호 병실에는 오래전에 뇌졸중이 와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시는 ‘임이’ 할머니가 계신다. 뇌졸중을 앓고 처음 입원했을 때는 혼자 밥도 드시고 말도 잘하셨다. 재작년에 다시 약하게 뇌졸중이 온 후로 말도 못 하시고 팔다리도 혼자 움직일 수 없어 거의 종일 침대에 계신다.      


이분은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말을 할 수 있던 때는 자주 ‘아줌마, 아줌마 여기 밥 한 상 내와요.’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다른 환자들이 다 잠든 조용한 새벽에 뜬금없이 배가 고프다며 상을 차리라며 복도를 울리던 우렁찬 목소리가 두 번째 뇌졸중이 온 후로 사라졌다. 그래도 먹여 드리면 밥을 드실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할머니, 이거 뭔지 아세요?”      


내가 귤을 꺼내 보여드리자 임이 할머니 눈이 반짝 빛난다. 할머니 앞에서 귤껍질을 깐다. 할머니 눈길이 귤을 지키고 있다. 침대 윗부분을 높여 상체를 세워 앉힌 후 한쪽씩 입에 넣어드린다. 귤을 잡은 내 손이 할머니 얼굴 가까이 가면 입을 ‘아’ 벌리신다. 애기들이 하는 것처럼. 제법 큰 걸로 골라서 드렸는데 순식간에 하나를 다 드셨다. 아침 식사 전 공복이니 하나만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긴 복도 끝 남자 병실로 간다. 새벽에 안녕히 주무셨냐는 내 인사에 항상 점잖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웃으시며 내 손을 잡아 주시는 ‘정태’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은 귤을 가져왔어요.”     


아직 잠에서 덜 깨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눈앞에 대고 귤을 보여드린다. 눈을 딱 뜨신다. 다른 때보다 더 입꼬리를 올려 웃으신다.    

  

“제가 까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내가 귤을 까는 동안 혼자 스스로 침대 양옆의 손잡이를 잡고 앉으신다. 팔과 손에 힘이 꽉 들어있다. 새벽에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껍질만 벗긴 귤을 손에 놓아드리자 혼자서 잘 드신다. 맛있냐는 내 물음에 싱글벙글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침대 옆 사물함에 귤을 하나 더 놓고 나왔다.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주신다.      



간호사실로 돌아와 나도 하나 꺼내 먹어본다. 껍질을 까는 데 싱그러운 향이 코로 스민다. 요 며칠 하염없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때가 많았는데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기분이다. 한쪽을 입에 넣고 씹어보니 새콤한 물이 입 안에 퍼진다. 멍한 머리가 개운해진다.      


그렇게 귤 하나를 까서 먹는 동안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가 다시 멍해졌다가를 반복한다. 귤 한쪽 입에 넣는 일도 못 하실 정도로 갑자기 큰 슬픔에 놓인 분들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 슬픔을 지켜보는 일밖에 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 생각에 씹어 삼키던 귤이 목에 걸린다. 그래도 한 알을 끝까지 다 먹었다. 꿀꺽꿀꺽 차근차근 다 먹었다. 그분들이 눈물을 닦을 힘이 조금 나면 오늘 우리 병동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했던 것처럼 귤 하나씩 까드리고 싶다. 한쪽씩 떼어 먹여 드리고 싶다.      


“귤 하나 드실래요? 제가 까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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